고여있던 짜디짠 바닷물

상태 인지, 인정 그리고 선택

by 권다이
sea-7301366_1920.jpg



관계 속에서 ‘내 상태’를 인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느끼던 또는 내 상태도 모르고 행동하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부정하고 살았던 과거들이 주변 관계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는가 지금이 되어서야 알 수 있게 되었다.


상태 미인지는 결국 관계의 연결을 얽히고 끊어지게 만들었다.

양쪽으로 벽을 세웠고, 맞잡을 수 없는 손처럼 이해할 수 없는 오해를 만들곤 했다.


배려의 부족 아니, 사실은 배려보다 앞선 자신을 속임.

나를 속이고, 그렇게 상대방도 속이고 결국 가짜 배려와 가짜 반응들 속의 거친 벽만 점점 자라나게 했다.


피곤함을 인지하지 못하던 때, 더움을 인지하지 못하던 때, 기분 나쁨을 인지하지 못하던 때, 사랑을 전해주던 때, 용기와 자긍심을 심어주던 때, 미안함을 전해주던 그때들.

이런 순간들이 기억에 밟힌다.

왜 그토록 솔직하지 못했을까? 그들의 마음에 짜인 각본과 비즈니스 메일처럼 회신하며 속으로는 기대를 품고 살았던 것일까?

그들의 진심이 담긴 직간접적인 표현과 말들을 나는 왜 내 페르소나를 통해 걸러진 결과물들로만 받아들였던 것일까?


rock-formation-7404193_1920.jpg


고여있던 거친 바위틈 사이의 짜디짠 바닷물에도 거짓말처럼 새로운 바닷물이 밀려 들어왔다.

어느새 커다란 바위는 바닷물로 잠기게 되었고, 그 물은 더 이상 틈새에서만 움직이던 물이 아니게 되었다.

달라짐을 느낀 고인 물은 마치 농도차에 의한 확산처럼 다른 바닷물로 끌어당겨짐을 느꼈고, 주변 맑은 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내가 깨끗하고 따뜻하고 귀중한 바닷물인 줄 알았는데, 왜 너희랑 다르지?”

“내가 왜 이리 탁하고 이물질이 많고, 더 짠 걸까..?”

그러다 주변에 있는 특히나 맑은 바닷물의 속삼임이 들려왔다.


“나도 짜. 나도 종종 탁해지고 이물질들이 나에게 들어오곤 해.

그게 나야. 여긴 모두가 그래. 너처럼 고여있던 친구들도 함께 많이 존재해.

여기 함께 있다 보면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우린 그럴 수 있어. 우린 흐르고 있고, 모든 바다 생명체와 이물질 그리고 온도와 농도차에 의해 우린 자주 변해. 난 이 사실을 알아.”

“이 사실을 모르면, 난 투명하지 못할 때,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고, 너무 짜졌을 때에도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지.

우린 모두 투명할 수 있고, 짤 수 있고, 추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서로 부딪힘 없이 잘 흐를 수 있어.”

“너도 우리랑 함께 하자. 섞여 흘러가보자.”


beach-1751455_1920.jpg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많다.

거친 바위틈에 고여 있던 물처럼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어떠한(되고 싶은) 모습으로 고정시키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강박과 같이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맑은 물의 말처럼 난 이제 흘러 들어갈 의향이 생겼다. 아니 나를 받아줄 수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난 착하지 않을 수 있고, 더우면 예민해질 수 있고, 피곤하면 짜증 낼 수 있는 사람이다.

모두가 그렇듯 나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인지하고 난 다음의 행동은 내 가치관과 관계의 특성 등을 고려해 반응해야 함을 안다.

그렇게 유연하게 흘러 들어가, 종종 섞이는 이물질들조차 맑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맑은 마음을 가진 남들처럼.

매거진의 이전글68세와 31세, 용기 있는 자들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