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 속의 낯선 사람

같이 셀카를 찍었는데 기억에 없다?

by 김유려

자기 전, 불을 끄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웠다. 평소에는 SNS를 보다가 잠들지만 오늘은 왠지 오랫동안 보지 않은 갤러리 폴더에 손이 갔다. 최근 사진부터 시간을 역행하며 사진을 구경했다.

우리집 강아지, 고등학교 때부터의 단짝친구, 든든한 우리 언니, 사흘 전 학교에서 찍은 단풍 풍경, 사랑하는 남자친구, 같은 과의 친한 동기, 그리고 지난 주말에 찍은 카페에서의 커피 두 잔, 그 다음은 그 커피를 주문한 나와, ...... 누구지?


나와 또래인 것 같은 여자가 내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방금 전 사진에서 본 그 카페가 확실하다. 사진 파일 정보를 확인해봤다. 지난 주 토요일 오후 3시경에 찍힌 사진이다. 내가 지난 주 토요일에 뭘 했더라?


나는 다이어리를 따로 꼼꼼하게 쓰지 않지만 누구와 만나는 약속 정도는 잊어버릴까봐 적어두는 편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스탠드를 켜고 다이어리를 펼쳤다. 지난 주 토요일......'2시 반, 존재'. 그렇게 써있을 뿐이다. 사람 이름이 존재일 것 같지는 않다. 혹시 카페 이름일까? 내일은 오전 수업밖에 없으니 오후에 학교 주변에서 이 카페를 찾아보기로 했다. 왠지 학교 주변일 것 같다. 요즘은 학교 주변 말고는 다른 곳에 잘 가지 않는다. 나는 찜찜한 마음을 안고 불을 끈 채 다시 침대에 누웠다.




수업이 끝나고 대충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얼른 먹어치운 다음, 어디인지도 잘 모르는 사진 속 카페를 찾아나섰다. 이름이 '존재'일지도 모르는 카페.


조금 헤매다가 학교 뒤 쪽문 쪽에서 갈라져 나오는 한 골목 앞에 서자 왠지 엄청난 기시감이 밀려왔다. 이 감각에 발걸음을 맡기기로 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발이 저절로 움직여서 걸어가는 것 같았다.


복잡한 골목을 여러 번 돌고 나서 난 걸음을 멈췄다. 5~6 테이블 정도가 마련되어 있는 적당한 크기의 우드톤 카페, '존재'. 그렇다. 난 이 카페를 안다. 왜 여태까지 기억이 나지 않았을까?

망설임 없이 카페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얇은 천으로 가려진 주방 안에서 앞치마를 걸친 카페 주인이 나왔다. 그는 남자였다. 그 외에는 그의 얼굴에서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나이, 감정 상태, 성격......이상하게 어느 것도 추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평소보다 빨리 방문해 주셨네요. 뭘로 드릴까요? 항상 하시던 카푸치노?"

"아...네."


나는 그를 처음 봤지만 그의 말투에는 오래된 단골을 대하는 듯한 온기가 담겨있었다.


나는 카페 벽면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 곳에는 온갖 사람들이 이 카페 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빽빽하게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마치 그 부분만 사람이 사라진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사진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정작 어깨동무의 상대방은 없다든가.


나는 내 휴대폰 갤러리 속 셀카에 배경으로 나온 자리 근처를 살폈다. 예상대로 활짝 웃는 내 얼굴이 있는 사진도 붙어있었다. 하지만 내 옆사람은 다른 여러 사진들처럼 형태가 사라져 있었다. 내 인상착의와 표정으로 봤을 때 휴대폰에서 봤던 그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커피를 들고 그 사진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휴대폰 갤러리를 열고 어제의 그 사진을 열어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액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왠지 어리둥절한 모습이군요. 당신의 사진은 이쪽에 훨씬 더 많습니다."


가만히 날 지켜보던 카페 주인이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이끌리듯 그의 손짓을 따라 한쪽 구석 벽으로 다가갔다. 카페 주인 말대로 그 곳에는 거의 내 사진으로 차 있었다. 같이 찍혀있는 상대도 다양했다.

같은 과의 친한 동기, 사랑하는 남자친구, 든든한 우리 언니, 고등학교 때부터의 단짝친구, 내가 안고 있는 우리집 강아지.


......가 없었다.


나는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 미친듯이 사진을 비교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새빨갛고 온전한 손가락 모양의 예쁜 단풍나무 잎새뿐이었다.


카푸치노가 점점 식어갔다.




그 날 밤, 나는 갤러리의 사진들을 지워나갔다. 아까운 기분이 조금 들긴 했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도 있었다. 내 기억은 잘못되지 않았다. 난 눈은 울고 입은 웃으면서 사진을 삭제했다. 그저 사진을 지웠을 뿐인데 메신저 어플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알 수 없음)으로 표시되고, 통화와 문자 기록도 사라졌다. 주소록에는 손대지도 않았는데 저장되어 있는 번호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버린 후 잠들었다.


다음 날 밤에 나는 다시 휴대폰을 켰다. 메신저와 통화 기록, 주소록같은 것은 그대로였지만 사진은 복구되어 있었다. 화면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존재' 카페의 테이블과 누가 앉았다가 그대로 일어난 것 같은 구도의 의자 두 개뿐. 그리고 머그잔에 꽉 차 있는 커피 두 잔.


커피 두 잔에서는 옅은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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