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당구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진통을 견뎌냈고 첫아이라 12시간 가까운 진통에 시달리며 아이를 낳았고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올라가던 내게 수고했다며 건네던 남편의 꽃다발을 안고 쓰러지던 나는 그날부터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후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혹독했다.
나이 22살에 엄마가 되었으니 준비가 되었을 리 만무하고 23살의 아이아빠는 주중에는 근무지가 멀어 집에 오지 않았고 주말에 집에 와서는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기에 친구들을 만나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한 남편의 근무현장의 특성상 대부분이 주말부부로 지내던 직원들이 대다수였고 그러다 보니 매일 저녁이 회식이었다.
또한 저녁의 회식에 술이 빠질 수는 없는 노릇, 젊은 아빠는 매일이 술자리였고 연락이 끊기는 건 다반사였다.
그날도 남편은 회식자리가 있다는 얘기를 했었고 역시나 술에 취한 남편은 통화가 되지 않았다.
취했지만 숙소에 무사히 들어갔다는 소리를 들어야 나도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아 늦은 밤 전화기에 한껏 귀를 기울이던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너머의 남자는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횡설수설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라 남편의 목소리인지 아닌지는 구분할수도 없었다.
나는 오늘도 취한 남편을 달래 숙소로 들어가서 자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한참 통화를 이어가다 무슨 말을 했었는지 멍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고 또 취해서 어떡하나 낙담하던 그때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고 취하지 않은 남편의 목소리였다.
나는 방금 전까지 취한 남편인 것 같은 사람이랑 통화했던 얘기를 했고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남편의 얘기를 듣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 나는 누구랑 통화를 했으며 오늘도 잔뜩 취한 남편 때문에 애태우던 상황이라 그래도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낯선 이와의 통화의 두려움이었으리라.
대학을 갓졸업하고 엄마가 된 나는 친구들은 취업에 여념이 없을 때 미래를 꿈꾸며 준비하기는 커녕 집에서 쫓겨났으니 당장 내한몸 누일곳과 이제 금방 태어날 아이와의 쉴곳을 찾아야만 했다.
사범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지만 취업을 준비하지도 못했고 나의꿈에대한좌절과 그로인해 무너진 자존감은 상황을 악화시키기만했고 남편과의 갈등은 극에 치닫고 있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의 모든 일들이 내겐 항상 두려웠고 삶이 무서웠다.
지리산에서의 산행 후 그 사람의 요구는 끝이 없었고 임신을 하였다.
그 사람은 아직 결혼을 하지도 못했고 아이를 키울 형편도 되지 않으니 병원을 가자고 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학 3학년이었고 방법이 없었다. 수술대위에서 흐르는 눈물은 나의 몸이었다. 나는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뒤 찾아온 소식, 이번에도 그 사람은 병원을 가자고 하였다.
나는 이번에는 안된다고 하였다. 내 몸을 더 이상 망가뜨릴 수 없다고 하며 병원 앞에서 끝까지 버텨 첫아이를 품에 안았지만 혹독한 현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아마도 우울증이었으리라...
남편과의 갈등에 매일이 힘들던 날 집의 작은 창문이 눈에 보였다.
창문아래 세상이 궁금했다.
창문에는 자유가 있을 것 같았다.
하늘도 올려다볼 수 있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내 몸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문이 좋았다.
창문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만끽하던 그때 작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창문에 올라간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내 아이의 눈동자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를 올려다보는 아이가 보였다. 작은 눈동자가 보였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엉엉 울면서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내게 안겨있던 아이의 채취가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창문을 바라볼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따라온다.
오늘도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