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즐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
나는 계절이 바뀌면 가장 먼저 코가 발동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입에서 튀어나왔다.
“헉, 겨울 냄새난다.”
사람들은 보통 “음~그래?”하고 가볍게 넘기지만 고등학교 시절 처음 만난 친구 현수는 달랐다.
너도 계절 냄새를 맡냐며.
우리는 이제껏 얼굴은 알지 못했지만, 같은 것을 공유하고 살았다는 생각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이렇듯 나는 계절의 변화에 매우 예민하다.
가을도 타고, 봄도 탄다.
조금 피곤한 성격이랄까..
그래서 어떤 계절이 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깨끗하고 하얀 냄새가 나는 겨울이 오면 뜨끈한 홍차에 쑥떡을 먹고, 이터널 선샤인을 본다.
나는 이 영화를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게 이터널 선샤인은 곧 겨울이니까.
탁한 먼지 냄새와 벚꽃 냄새가 섞인 봄이 오면 알게 모르게 들뜬 마음으로 10년 전 방영했던 '우리 결혼했어요'를 찾아보곤 한다.
비린 바다내음이 나는 여름이 오면 창문을 활짝 열어 자두를 베어 먹으며, 여름 향이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을 찾아보게 된다. 물론 단 한 번도 끝까지 본 적은 없다.
가을이 오면 멜로가 체질은 무조건 재생.
가을은 너무 짧기에 조금만 늑장 부리면 코끝이 시려오는 겨울이 되고야 만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엄브레인 트렌드 모니터에 따르면 전국 만 13~6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제철 코어 소비 트렌드 관련 U&A 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중소비자들은 사계절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체감하며 계절별 음식이나 활동을 즐기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제철코어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계절을 적극적으로 느끼고, 그 계절에만 할 수 있는 음식과 활동을 찾는 것.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해서이다.
나는 이 흐름이 참 좋다.
결국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다면 어느 순간 그 끝에 섰을 때 문득 슬픈 마음이 들 것 같지 않은가.
겨울이 된 지금, 지난여름 비싸고 금방 상할까 봐 망설여던 복숭아가 그렇게나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게 뭐라고 먹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남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 더 착실하게, 우리만의 제철코어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