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추경사(近秋經思)

– 가을 즈음에 경험하고 사유한 것

by 문샤인

(Coldplay- Fix You를 들으며)


생. 장. 수. 장(生.藏.收.藏). 생명은 계절을 따라 흐른다. 봄에 태어나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결실을 맺고, 겨울에는 내면의 자원을 간직한 채 멈춰 선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유독 잔인했다. 태양은 무자비했고 그 열기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성장을 이끌어야 할 시간들이 버거움 속에 흘러가 버렸다. 가을이 이미 와야 할 시기이지만, 여전히 날씨는 잔인했다. 성장을 완성하고 익히는 시간이 필요했건만 그마저도 짧아져, 깊은 안식과 결실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는 모두 힘들다. 인생은 각자에게 주어진 성장의 계절을 건너야 하는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 계절이 불가항력의 무게로 우리를 짓누른다.


사실 생명의 본질은 위기를 안고 있다. 생명의 첫 단계, 세포분열부터가 생존을 위한 도전의 연속이 아니던가. 인간 역시 다르지 않다. 다만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바로 이성, 즉 생각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생각의 세계에서조차 죽음이 존재한다. 생물학적 죽음만이 아니라, 철학적 죽음도 있다. 생각이 죽으면 나 역시 죽는다. 내 생각이 닿지 않고 내 의지가 잠잠해질 때, 나는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초심이 중요하다. 초심은 '잘해보고 싶다'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열망이다. 모든 열정은 여기서 시작되고, 모든 권태와 소진(번아웃)도 결국 초심을 잃는 데서 비롯된다. 가끔 고단함에 지쳐 초심을 내려놓기도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초심이야말로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음을 깨닫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성장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그 마음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는 과정이다. 인간은 초심을 잃었을 때 가장 흔들린다.


결국 모든 시련의 계절을 겪으며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때로는 무겁고 깊이 드리운 겨울을 통과해야 한다. 모든 생명은 그렇게 시간을 겪고 흘려보내며 한 순간씩을 견딘다. 가지 끝의 마른 잎들이 차가운 바람 속에 스러지듯, 우리도 감정의 한 계절을 보내며 그 안에 깃든 무거움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그러나 머지않아 봄은 반드시 돌아온다. 계속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그 빈 가지에서 어느새 새로운 잎과 꽃이 피어오른다. 우리도 그렇게 다시 시작한다. 생명의 순환은 무수한 위기 속에서도 계속되고 우리의 여정도 멈추지 않는다. 지금의 힘든 시간도 지나고 나면, 그것을 품에 간직할 계절이 오리라.


202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