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꿈은 저주다
얼마 전 재미있는 쇼츠를 봤다. 개그맨 오지헌이 무려 17년 만에 개그콘서트에 복귀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목이 더 웃기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한번 웃기만 하면 모두를 웃길 수 있다. 머리를 쥐어짜 내며 밤샘회의를 하며 개그를 짜도 PD한테 퇴짜를 맞기 일쑤인데 오지헌은 얼굴 하나로만 먹고 산다. 정말 신이 내린 얼굴, 신이 내린 재능이다.
나는 별다른 재능이랄 게 없다. 어거지로 꼽자면 사소한 것도 아주 잘 기억하는 '재주'는 있다. 어찌 보면 나는 '재능'이 중시되는 직업에서 별 재능은 없지만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급할 게 없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독설과 팩폭을 마구 할 것이다). 나 그동안 공부하고 힘들게 졸업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집에서 뒹굴거리기를 두 달. 그리고 3월부터 강남의 S학원에 등록했다. '난 아직 실전은 어려우니까 입문보단 조금 높고, 실전보다는 살짝 낮은 중간 반에 들어가 봐야지.' 한 꼭지씩 재생되는 음원을 듣고 돌아가며 짧은 순차통역 발표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솔직히 건방진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이 정도면 그냥 무난하겠는데?'
두 달 동안 적당히 학원을 왔다 갔다 하며, 학원 끝나면 강남대로의 번화한 거리를 둘러보고 쇼핑도 하며 '행복 공부'를 했다. 그러다 문득 포털에 검색하면 더 많이 나오는 학원이 궁금해졌고, 드디어 주말반에 처음 가서 3시간 강의를 듣는 동안 진짜 입이 헤- 벌어지게 놀랐다. 지문과 자료의 수준, 그리고 강의 주안점이 달랐다. 수업이 시작하고 30분도 안 되어서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5월부터 학원을 갈아탔다. 진짜 문제는 사실 지금부터. 내가 영어 실어증에 걸렸단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전환한다는 것은 영어를 잘 이해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였다. 올바른 표현, 적확한 단어 사용, 비문이 아닌 깔끔한 문장으로 말을 맺는 것. 여기에 들은 것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덤. 처음 깨달았다. 내가 시리아 난민이나 동성결혼 합법에 대해서 영어로 얘기해 보거나 글을 써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지문을 나눠주고 파트너와 한 단락씩 한-영 시역을 한 다음, 간단한 피드백을 주는 세션이 있었는데, 정말 한 문장도 부드럽게 깔끔하게 말하지 못했다. 등에서 땀이 나고,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눈앞은 하얬다. 파트너는 아마 재수 없이 수준 떨어지는 사람하고 붙었다고 생각하는 듯, 냉랭하고 사무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때서야 비로소, 더 이상 안일하게 깔짝거리며 학원만 왕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는 지겹고 식상한 이야기다. 매일 영어기사를 찾아 자료를 만들고, 학원에서 받은 자료를 복습하고, 모르는 표현들을 노트에 다 정리하고 외우는 나날들. 해도 해도 끝이 없이 모르는 게 나왔고, 좀 공부했다 싶으면 전혀 모르는 새로운 내용이 등장했다.
수업에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수강생이 계셨다. 20대가 대부분이고 간간히 30대처럼 보이는 수강생은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던 그분.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가정주부셨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셨고 수업시간에도 열의를 가지고 임하셨다. 항상 적당한 미소를 띤 얼굴로, 자기보다 스무 살은 어릴 수강생들에게도 무척 상냥하셨다. 한 번은 그 분과 한-영 시역 짝이 되어 서로 한 단락씩 문장구역 통역을 하는 것을 봐주게 됐는데, 깜짝 놀랐다.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여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적을 것이 없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디서부터 피드백할지 감도 안오는 상태랄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단어 하나씩 정성껏 왈도체 번역을 하고 계셨는데, 동사나 전치사가 전부 틀려서 도무지 사람의 언어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더 황당했던 건, 여사님은 정성껏 언어를 치환하는 과정에서 진심으로 뿌듯하신 것 같았다. 묘하게 그게 노력만으로 만족하곤 하던 내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아 더 찝찝했다. "이 정도면 나름 잘했잖아?"라고 생각될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수없이 느꼈지만 프로의 세계에 "나름"이란 말은 아무 쓸데없는 말이다.
그 후 나도 모르게 수업에 그분이 계시나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저분, 진짜 통대 갈 수 있을까? 저러다 그만두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업 형식은 짝지어 시역 연습하는 것이 아닌, 진짜 한-영 통역 발표를 하는 단계로 넘어갔는데, "이거 해보실 분?"이라고 선생님이 물어보면 수강생들이 자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날은 그 여사님이 해보겠다고 자원하셨고, 선생님은 "음."이라고 잠시 멈추셨지만 "해보세요, "라고 기회를 주셨다. 수강생 30여 명이 조용히 한 사람이 하는 통역을 귀 기울여 듣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통역이 너무 힘들어서 자원할 생각을 1도 못 해서, 여사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들렸던, 통역인지 뭔지 모를 말이 끝나고 한동안 강의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의 표정은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서늘하게 굳어 있었다. 어떤 결연한 의지였을까. 굳게 다문 선생님의 입에서 마침내 나온 말은 충격이었다.
"___님, 제가 하는 말을 오해하지 마시고, 잘 들어주세요.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에서 어법이 맞은 문장이 단 하나도 없어요. 악센트도 틀렸고. 발음도 교정이 필요하고. 지금 이렇게 하셔서 시험에 합격하실 거라는 생각은 버리셔야 해요.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만하시는 게 맞습니다."
충격에 소름이 쫙 돋았다. 모두의 앞에서 공개적으로 공부를 포기하라는 권고를 들은 여사님의 표정에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선생님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저분 진짜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공부하고 계셨는데. 아무리 그래도 자기 학원에 수강료를 지불하고 배우러 온 학생인데 저렇게 차갑게 말해도 되는 걸까? 따로 말한 것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말한 건 너무 심하지 않았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여사님은 대단했다. 그 모진 말을 듣고도 학원을 끊지 않으셨다. 1차 대비, 2차 대비 수업에 꼬박꼬박 나오셨다. 어느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에코백을 든 여성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여사님이었다! 우린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진짜 잘 되시면 좋겠는데. 저 나이에 진지하게 입시에 도전하신 건데...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사님과 스터디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은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여사님은 1차 시험이 끝나고 더 이상 학원에 나오지 않으셨다. 입시를 단념하신 것 같았다.
대학교까지 미국에서 마친 나는, 사실 중학교 때 이후론 처음으로 한국의 냉정한 입시 경쟁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진짜 재능이란 게 있다는 걸 내 피부로 내 삶에서 느껴 본 것은 통역대학원 입시가 처음이었다. 수강생들 사이에선 합격이 확실해 보이는 에이스들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가끔 새로 온 낯선 얼굴의 수강생에게 발표를 시켰을 때, 유창하고 멋진 발음으로 통역이 나오면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셨다. '나이스. 우리 학원에 와줘서 고맙다' 대충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잘하는 유망주는 아무리 먼 타 지역에 있어도 스카우트해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재능 앞에서는 별수가 없다. 나는 왜 재능이 없을까를 한탄하지 말고, 오히려 노력하면 불가능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에 고무되는 게 낫다. 나에게 정색하며 "평범하게 잘하는 통역사가 돼라"라고 조언해 주신 교수님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꾸준하게, 성실하게 성장하라고. 다행히 유망주도 뭣도 아니었던 나는 어찌어찌 사람들이 최고라고 하는 그 통대에 합격했고, (아마 원장님은 놀라지 않으셨을까.) 통대에서도 나머지 90프로는 들러리란 소리 들으며 임팩트 없이 그럭저럭 다니다가 어찌어찌 졸업했다. 합격 발표가 나고, 떨어진 친구들의 소식을 접했을 때는 합격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마음이 무거웠지만, 들어가서 동기들의 실력을 보니 과연 붙을 만한 사람들만 들어왔더라.
그때 선생님이 여사님께 "그냥 그만두시는 게 낫다"라고 잘라하신 말이 이제는 좀 다르게 보인다. 헛된 희망 가지지 말고,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더 잘하시는 일을 하라는 의미 아니었을까. 그분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돈과 시간을 투자하시는 것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통역사는 본인의 퍼포먼스에 관대하면 안 되는 직업이다. 항상 정확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 못 들으면 안 되고, 못 알아들으면 안 되고, 못 알아듣게 얘기해서도 안 된다. 그런 메타인지가 없으니 정신 차리라고 돌직구를 날리신 것이었을까. 주변에 자녀가 웹툰 작가가 되겠다는 등, 가수가 되고 싶어 실용음악과 입시를 치지만 3수를 해도 원하는 학교에 합격을 못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사님과 그때 독설을 날리신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 여사님은 선생님을 자기의 꿈을 짓밟은 못된 선생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기를 위해 직언해 준 고마운 분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통역사는 자신의 퍼포먼스에 가장 냉혹한 평가자다.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좌절과 열등감에 빠지고, 꿈은 한순간에 저주가 되지만, 그 저주를 푸는 유일한 방법 역시 '나의 재능 없음'을 똑바로 마주하는 메타인지뿐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는 잘 나가는 궁정 음악가로서 모든 것을 누리고 있었다. 6살의 모차르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비교와 자괴감, 열등감에 몸부림치던 살리에리는 점점 미쳐가다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간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과 나의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대신 나는 오늘도 어제보다 한 단어 더 잘 듣고 정확히 바꾸기를 원한다. 'You learn something new every day.'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재능은 없지만 노력하는 평범한 통역사로서, 어제의 나보다 1%라도 나아졌다는 생각만이 천재들의 사이에서 프로페셔널 자존감을 지키는 나만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