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가장이 된다는 것
너희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부친은 ‘동물의 왕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곤 하셨다. 당시 어렸던 나는 지루한 다큐멘터리보다는 오락프로그램이 더 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곁에서 TV를 보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지루하고 따분했던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펭귄 편은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펭귄의 귀여운 외모도 한몫했지만 영하 50도가 넘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어설퍼 보이는 몸짓으로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기르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특히 황제펭귄은 헌신적인 육아로 유명한데 알을 낳느라 에너지를 모두 소비한 엄마 펭귄이 먹을 것을 찾아 떠나면 아빠 펭귄이 60여 일 동안 알을 품는다. 아빠 펭귄은 알을 품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몸무게가 거의 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엄마 펭귄이 새끼에게 먹일 양까지 실컷 배를 채우고 돌아오면 아빠 펭귄과 교대하지만 만약 알이 부화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아빠 펭귄은 자신의 몸속에 비축해 놓았던 ‘펭귄밀크’라는 물질을 뽑아내 새끼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너희를 꼭 빼닮은 자식을 낳아 반듯하게 키우는 과정으로 남극의 극한 환경에서 알을 낳아 키우는 펭귄의 고군분투와도 같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식은 성인식과 함께 대표적인 통과 의례로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 듯하다.
우리만 보더라도 1895년 을미개혁과 함께 단발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결혼한 남자들은 상투를 틀고 여자들은 쪽진 머리를 했다. 상투나 쪽진 머리는 전통 헤어 스타일이기 이전에 혼인 여부를 나타내고 성인으로서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상징이었다. 특히 남성은 혼례나 성인식을 치루 후에야 진짜 이름(冠名)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그 이름이 족보에 오를 수도 있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서구화와 산업화에 따라 이러한 전통적 의미가 퇴색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관념 속에는 혼인 여부를 성인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중요한 가정을 이루고 가장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
우선은 평생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네 아내를 존경하라. 너 자신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네 아내에게 언제나 존경받을 수 있는 남편이 돼라. 가정의 모든 행복은 아내에게 달려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중요한 평생의 배필은 화려한 외모와 든든한 배경만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다. 너희의 단점과 부족함까지 이해하고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너희 스스로가 상대방에게 정직해야 하며, 아주 작은 결점까지도 숨김없이 털어놓아야 한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숨겨 놓았던 작은 거짓과 허물은 결국 부부 사이를 차갑게 식게 하고 둘 사이를 단절시키는 스노우 볼이 되고 말 것이다. 부부 사이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시련과 역경을 함께 헤쳐 나가야 할 운명 공동체이므로 서로에게 거짓됨이 없이 정직하고 솔직해야 하며, 그러한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둘 사이의 사랑과 존중하는 마음도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이다. 가장은 그 집안의 경영을 책임지는 수장이자 핵심 주체이다. 경제력을 누가 쥐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생존을 위한 필수 자본을 조달하는 것은 가장의 가장 큰 의무이자 책무이다. 물론 경제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해서 가정을 꾸리지 말라는 법은 없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고는 말할 수도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며, 온 가족의 사랑과 합심으로 극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가정은 여러 가지 불편함과 어려움으로 인해 불화와 반목을 야기할 수 있으며, 끝내 붕괴의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데 경제적인 안정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기 마련이다. 억대 연봉을 받고 고급 세단을 타면서 강남에 자기 소유의 대형 아파트에서 살아야만 경제적인 안정을 이룬 것은 아니다. 각자의 여건과 환경에 맞는 수준에서 만족하며, 차곡차곡 더 큰 부를 쌓아 가는 것 또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재미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한 아가페적인 헌신과 사랑이다. 우리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은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이자 혈연으로 맺어진 특수 집단이다. 따라서 가족은 법률적 해석이나 강제 의무가 아닌 도덕과 윤리가 우선시되는 불가역적인 관계를 이루게 된다. 그러한 관계의 핵심이 바로 헌신과 사랑이다. 여타의 사회 공동체가 규율과 제도, 이해관계 등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된다면, 가족은 천륜으로 맺어져 구성원 간의 사랑과 헌신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고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너희 또한 아내와 자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하며, 가족을 유리로 만든 성배와 같이 소중히 여겨야 한다. 유리잔은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성배가 되기도 하고 독배가 되기도 한다. 너희는 가족이라는 유리잔에 성수를 가득 채워 빛내게 하고 그것이 깨지지 않도록 헌신적으로 돌봐야 한다.
그리고 가족의 부족함과 단점을 채워주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특히 비록 너희 자식이 부족하거나 모자란 부분이 있더라도 늘 사랑으로 감싸고 이를 극복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으로 돌보기를 바란다. 물론 제아무리 사랑으로 맺어지고 피를 나눈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실망하고 화가 날 때도 많을 것이다. 자식 또한 사람이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기에 저마다 생각과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너무 서운해하거나 다그치지 말고 스스로 선한 방향과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살펴주어라.
너희 자식들이 장성하여 사회생활을 할 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인구절벽 시대에 존재만으로도 귀한 인적 자원이 될 것이며, 엄청난 복지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니 너희의 관점과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훈육하기보다는 믿고 기다리되 행동의 결과에는 책임지는 자세를 갖도록 가르치기를 바란다.
황제펭귄이 알을 품고 키우는 장면이 감동적인 것은 저처럼 작은 미물도 자신의 둥지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너희 또한 도리와 책임을 다할 때 가정의 안녕과 평화가 유지되고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권위도 바로 설 것이며, 너희를 닮은 너희의 자식들 또한 훌륭하게 잘 자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