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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준 Jul 18. 2016

더 나은 효율성

시민투 연재 2

투자는 생산성과 효율이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곳에 해야 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을 증명하여 수익을 만드는 기업에는 더 많은 투자 자금이 들어가려 하고, 생산성이 낮은 기업에는 있는 자금도 빠져나가려고 한다. 투자활동의 부익부 빈익빈 속성이다.       


기업가로 번역하는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라는 단어는 약 2백 년 전 프랑스 고전 경제학자 장-바티스트 세이(1767-1832)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경제적 자원을 생산성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사람들로서, 특별히 자본과 노동 사이 중간자로서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1] 오래전 나의 직장 선배로서 기업분석 실무에 많은 도움을 준 송경모 경제학 박사는 세이가 말하는 앙트러프러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했다.   


“앙트러프러너는 이미 자본을 보유한 사람일 수도 자본이 없어서 타인의 자본을 빌려오는 사람일 수도 있다. 오너일 수도 있고 피고용자일 수도 있다. 부자일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다. 개인 일수도 있고 법인의 경영자일 수도 있다. 모든 상인, 모든 기업 오너, 모든 부자, 모든 관리 경영자가 다 앙트러프러너인것은 아니다.”[2]


앙트러프러너가 기업 오너 또는 관리자와 같은 개념이 아니듯이, 앙트러프러너에 투자하는 투자자도 자본가 또는 전통적인 금융기관과 결이 같을 수 없다. 자본이 있다고 모두 투자자는 아니다. 장롱에 지폐를 샇아 놓는 것과 생산적인 곳에 그 자본을 흘려보내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생산적인 곳에 자본을 투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보다 더 생산적이 되려면 현재의 안정된 상태(status quo)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원을 결합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실패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금융은 위험을 싫어한다. 하지만, 금융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조건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모험 자본으로 불리는 벤처 캐피털도 무모한 베팅과는 다른 것이다. 투자 자본이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은 위험을 분산하고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얘기다. 그것은 투자 리스크보다 더 큰 가치를 기업가와 함께 만들어낼 때 가능하다. 자본이 정말로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은 기업이 단기적인 관점으로 그저 자본을 위한 최대 수익률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적인 미션과 가치 생산에 기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부자와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소유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 들어온다면 시민 공동체가 주인이고 자본주의는 도구이다. 사회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있다. 그 구성원의 가치에 따라 같은 자본주의도 다르게 작동한다. 주인이 주인행세를 하지 않으면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7.3% 오른 6,470원(135만 원/월)으로 결정되었다.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고용과 경제적 효과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다. 1만 원을 상회하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과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노동자 7명 중 1 명은 최저임금을 못 받고 있고, 최저임금을 위반해도 처벌받는 사업주는 고작 0.2%라고 하니, 정작 문제는 그 실효성에 있다고 하겠다. 최저임금 인상을 앞둔 지난 5월,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비비 절감에 따른 경비원 감원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고 한다. 결과는 51.85% 찬성으로 나왔고, 이에 따라 경비원 26명 전원으로부터 사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전원 해고 후 12-13명을 다시 채용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경우 경비원 1명이 2개 동을 관리해야 하며, 한 사람이 휴가라도 가면 1명이 4개 동을 관리해야 할 형편이다. 현재 이 아파트 경비원은 2교대로 매달 165만 원을 받고 있는데, 자신들을 해고하는 입주자들의 찬반투표 결과 공고문을 직접 붙였다고 한다. [3] 


이와는 반대로, 주민들이 합심하여 경비원 해고를 막아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 양평동 ㄱ 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대자보를 붙이며 무인 택배함이 주민들의 안전과 아파트 관리를 대신해줄 수 있느냐고 대응하여 압도적인 표차로 경비원 해고 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4] 아파트 관리비 절감을 위한 경비원 해고를 둘러싼 주민들 사이 논쟁은 이미 수년전부터 이슈가 되어 왔다. 몇 년 전 서울대학교 경제학 이준구 교수님 [5]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100명의 경비원 중에서 2/3에 해당하는 64명을 감원하고 통합경비 시스템을 도입하면 월 1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안내문을 받고 교수님은 애타는 심정으로 ‘상생의 정신이 실종된 사회’라는 대자보를 당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하셨다. (아래는 이준구 교수님의 글 마지막 단락)


“지금 우리가 빠져 있는 ‘효율성의 신화’는 근시안적 관점에서 본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 본 효율성이다.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월 10만 원이라는 눈앞의 이득을 포기하고 64명 경비원의 생계를 보호해주는 것이 결코 비효율적인 일이 아니다. 이런 상생의 정신이 더욱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아파트 주민들의 이득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 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 내 이웃들의 반발에 부딪칠 것을 알면서도 경비원의 대량 해고에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의 왜곡된 효율성 추구는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미시경제학의 대가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시민적 가치로 규율되지 않은 시장논리는 반드시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효율성이든 어떤 경제논리든 사람을 밀쳐내려고 하면 사람은 살기 위하여 반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시장기능과 효율성이 자본주의를 성장시키는 주춧돌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은 스스로 존재해온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시장은 사회 안에 존재하는 제도(an institution)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같은 시장기반의 자본주의도 그 제도의 운영규칙에 따라 아파트마다 동네마다 나라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스웨덴, 핀란드 같은 북구 유럽의 자본주의는 미국식 신자유경제와는 다르고, 싱가포르나 중국이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또 다르다. 각 사회 구성원이 시장과 기업, 경제의 운영 규칙을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직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말한 것처럼, 시장은 비시장적(사회적) 가치에 의해 규율되어 왔다. [6] 신자유시장 경제가 추구하는 효율성보다 반독점, 반부패, 차별 없는 시민사회적 가치에 의해 잘 규율된 시장 경제체제가 더 잘 운영되어왔고 인류의 번영에 기여했다.  


투자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일까? 요즘처럼 저성장 시대에 투자는 더 절실하다. 하지만, 투자도 근시안적 효율성 신화에서 벗어나서 더 평등하고 정직하고 안전한 사회에 기여하는 효율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선업체의 대규모 부실회계를 알고도 천문학적인 자금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떤 효율성인지 설명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경영자가 앙트러프러너가 아니듯이, 모든 투자자가 시민적 가치를 투자 결정에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으로서 투자자는 왜곡된 효율성 신화를 걷어 내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필요한 효율성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뛰어난 무기체계도 설치와 운영을 우리나라 자주적인 판단으로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될 수 있다. 경제성과 효율성은 부를 창출하기 위한 좋은 도구이지만, 시민 사회의 가치에 의해 규율받지 않으면 그 실효성은 떨어지고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


(다음에 계속)
      


[1]  “The entrepreneur shifts economic resources out of an area oflower and into an area of higher productivity and greater yield.” Onedictionary says an entrepreneur is “one who undertakes an enterprise, especially a contractor acting as the intermediary between capital and labour”. The Economist, 2009.4.27

[2] “세이가 말했다. 모험하는 기업가만이 앙트프러너다” 2016.3.20 테크 M 35호, 송경모 박사

[3] 연합뉴스. 2016.7.8

[4] 경향신문, 허남설 기자, 2016.3.1. 우리 아파트의 청소, 재활용, 안전을 돕는 관리원 역시 소중한 이웃이자 가족입니다. 감축 대상 경비원 중엔 10년 동안 한결같이 우리 아파트 관리를 맡아준 분도 있습니다. 한  관리비 4000원 정도를 아끼자고 가진 자들의 ‘갑질 행렬’에 동참하시렵니까.” (양평동 ㄱ아파트의 주민의 대자보 일부)

[5] 이준구 교수님은 2015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퇴임 후 명예교수가 되셨다. 

[6] 대니 로드릭 교수님의 다음과 같은 저서들을 참고하면 좋겠다.  <TheGlobalization Paradox>, <Economics Rules>,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제현주 번역, 원서 OneEconomics, Many recipies: Globalization, Institutions and Economic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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