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투 연재 1
나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실리콘밸리, 한국 및 개발도상국을 다니며 마흔 개 정도의 스타트업에 대한 엔젤투자 결정을 해왔다. 이때, 나는 창업가가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는가, 그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팀이 보이는 열정만큼이나 그 문제에 도전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나름대로 따져본다. 벤처투자도 자본주의 주요 활동인데, 자본적 논리 외에 다른 것을 개입시키면 자칫 조롱거리가 되거나 외국어를 말하는 것처럼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음을 안다. 경영이나 경제학에 대한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고, 투자 분야에 경험이 없어서도 아니다. 다만,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온 자본주의에 대하여 최소한의 해석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자활동도 마찬가지다. 나와 우리가 사는 세상에게 투자는 과연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나는 투자하면서 시민이기를 원하여,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투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을 스스로 공부하는 중이다. 이렇게 나는 스스로 명명하기를‘시민으로서 투자자’ 되기를 원하는 7년 차 연습생이다.
시대마다 대다수 시민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가 있다. 그것은 자녀에게 어떠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가와도 같다. 내가 주로 하는 스타트업 투자는 실패의 가능성도 높고 회수기간도 오래 걸린다. 따라서, 성공뿐 아니라 실패에 대하여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하고, 특히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하는 투자 결정이 우리 사회와 자녀들에게 미칠 영향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현대의 지배적인 투자철학에는 이 연결고리가 오랫동안 끊겼다. 이제는 그것을 다시 이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GE의 전설적인 CEO 젝 웰치는 기업에게 있어서 사회적 책임이란 기업을 성장시키고 고용을 창출하며 수익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2009년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주주가치 추구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개념(shareholder value is the dumbest idea in the world)이라고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 그는 2001년 퇴임했고,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자신의 재임 시절 형성되었던 GE 기업가치의 60%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는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에 블룸버그 통신은 그가 회심 경험이라도 한 것인가?라고 질문했는데, 그는 자신의 말을 재확인하며, “주주가치는 기업의 목적이나 전략으로 추진될 것이 아니라 결과 중의 하나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과연, 경제적 가치와 시민적 가치는 서로 배제되는 것일까? 사실, 이 두 가지 개념이 결합된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윤리적 소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사회책임투자(SRI) 등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시민의 가치와 자본주의 가치는 서로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 [2] 주식 투자자라면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는 기업을 선호할 것이다. 기업이 독과점적인 지위를 획득하면 그만큼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산업이 한두 업체에 의해 장악되는 것이 편하지 않다. 투자자로서 개인과 소비자로서 개인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경쟁이 치열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은 주문부터 배달까지 분단위로 시간을 잰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음식을 빠르게 배달받아서 좋지만, 이로 인하여 배송을 맡은 계약직원의 오토바이 교통사고율이 증가된다면 과연 이 경쟁은 어디까지 좋은가?
한 사람이 자본주의 안에 살고, 같은 사람이 사회 공동체 안에서도 살아간다. 어떤 경우에는 철저히 자본주의적 인격으로만 판단하고 어떤 경우에는 시민적 인격으로만 존재한다면 다중인격자이다. 한 인격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상황에서 두 인격 사이의 충돌을 피하지 말고 씨름해야 한다. 진지한 시민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본주의적 가치와 충돌을 피하기 힘들다. 소박한 시민은 과시적 소비주의와 충돌하고, 진지한 시민은 승자독식의 산업구조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센드힐 멀레이나단(Sendhil Mullainathan)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자신에게 배운 학생이 월스트리트 직장을 구했다는 소식에 더 이상 기뻐할 수만 없다고 자신의 고뇌를 밝힌 적이 있다. [3] 이렇게 고민하는 투자자 시민들이 모여서 다르게 투자하기 시작하면 막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자본주의라는 기차를 잠시 세워볼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과 사회, 그리고 자녀들의 세상을 위해서 내가 하는 투자 행위, 내가 하는 어떤 경제적 행위를 따져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음 편에 계속)
주:
[1] FinancialTimes 와의 2009.3.12 자 인터뷰 기사"Welch Denounces Corporate Obsessions."
[2] 이 주제에 대하여는 다음의 글을 참조. RobertReich, How Capitalism is killing democracy, FP, 10/22/2009
[3] Financehas the potential do great good, not simply make money” Sendhil Mullainathan, Professor of Economics at Harvard, 04/10/2015,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