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친구

by 꿈꾸는시미

필리핀은 아직도 나에겐 그리움이고 세컨드홈이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몇 개월간 친구들이 무척 그리워졌던 시간이 있었다.

너무나 황량하고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동남아 한 국가의 생활환경 때문인지

마음 둘 곳이 없었던 나의 일터와 가정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누구라고 특정 지을 수 없는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떠오르며 서러울 만큼 사무치게 그리웠다.

일상에서 잠들기 전 혼자 조용히 울었다


한국에 와서 출산을 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달필의 영어로 쓴 편지엔

'Ate Rira is dead'(리라언니는 죽었다-아테는 손위언니를 칭하는 필리핀어이다) '

낯익은 글씨체에 필리핀에서 친했던 친구가 떠 올랐고 내가 하도 연락을 하지 않아

농담을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계속되는 문장에서 그 편지는 필체가 꼭 같았던 '리라'의 언니가 쓴 편지였고 동생의 죽음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유언대로 화장을 했고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나를 많이 보고 싶어 했다고 했다.

죄책감,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왜 난 출처를 알지 못한 그리움이 그 친구의 소원이 담긴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한동안 꿈속에서 나타나던 그 친구와의 회포는 불발로 끝나며, 안타까움만 남기고 꿈에서 깨어나기가 반복되었다.


그 친구는 힘든 나의 유학생활을 지켜주는

버팀목이었다.

한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사귀면 그 사람이 속한 모든 곳에서 함께 친구와 가족같이 맞아주는 필리핀 문화 덕분에 난 필리핀 일상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접할 기회도 가졌다.

특히 마르코스집권이 무너져 한국인의 삼분의 일 이상이나 떠났던 전쟁과도 같았던 상황에서도

논문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전쟁 중에도 평안하리라는 말씀의 붙드심이 더 컸지만...


그 친구 덕분에 외국인과도 진정한 우정이 생길 수 있다

경험을 하게 되어 그때만 해도 세계화가 덜 된 시대에도 불구하고 난 타국인들에게 별로 거리감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필리핀 사람을 만나면 무척 가까움을 느끼며 실례인 줄 알면서도 전혀 낯선 필리핀 사람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붙이고 싶어진다.


그 친구가 아직도 보고 싶다.

대학에서 수학 강사생활을 하던 그 친구의 병은 심장협착증이었고 귀국 후 몇 년 후 방문하여 만났을 때 그 병으로 한차례 아팠고 나와 함께 방문했던 의료인의 도움으로 병세가 가벼워졌었다.

그리고 난 결혼이란 극복하기 힘든 폭풍우 속에서 헤매고 있어서 다른 어떤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우린 삶에서 얼마나 귀중한 것들을 놓치고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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