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여름날에는 여름이 싫다며 끈덕지게 몸을 휘감는 불쾌한 여름의 더위를 그리는 글을 썼는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슬그머니 얼굴을 들이미는 요즘은 정작 있지도 않았던 청량하지만 어딘가 씁쓸한 라임 맛 여름 소다수 한 잔을 담은 듯한 글을 쓰고 있다. 창밖 후텁한 공기를 요란하게 진동하던 매미 울음도 이제 와 들으니 괜히 시리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있지도 않은 한여름날의 추억이 자연스레 그려져 애타게 지난날만을 그린다. 만 번의 행복 후 불행의 그늘이 드리운 겨울은 달갑잖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만 번의 괴로움 후 한 번 환희의 빛이 내리쬔 여름은 휘황한 기억으로 남을 테다. 행복의 역설, 기억의 역설. 마지막 순간 찰나의 감정이 최종의 질성을 결정한다. 비록 작년 여름이 완연한 더위와 장마 그리고 습기로 뒤덮인 불콰한 계절이었다 해도 좋아하는 사람과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웃던 한 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에 그를 예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 내후년, 또 그다음 연도에도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비슷하게 더웠고 비슷하게 습했고 비슷하게 찝찝했음에도 작년 여름은, 저번 여름은 분명 행복했는데, 하며. 분명 그때의 매미 소리는 녹빛 여름의 한 장면을 그리는 아름다운 감성이었는데, 왜 올해의 울음은 가뜩이나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여름밤 간신히 눈 붙인 것마저 깨우는 지긋한 존재인가. 그리고 또 그 익년에는 이리 생각하리라, 다 같이 몽돌해변 한 자락을 걸으며 나붓나붓 부는 해풍 맞고 발 사이로 차디찬 바닷물 스미는 기억 따위를 회상하며 확실히 너그러운 기억이었다 하리. 가끔은 이를 명확히 알면서도 매번 같은 생각을 하는 내가 우둔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뭐 어떤가. 과거의 미화는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게끔 하고 추억을 추억으로서 빛바래지 않은 유려한 모습으로 남기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