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과 죄책감은 다르다.
사장은 나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잘하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 나를 좋아했다.
회의 중 다른 직원들이 어리둥절해도 나는 빠르게 요점을 파악했고, 일이 막히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결했다.
그런 내 모습을 사장은 눈여겨봤다.
퇴근 후, 그는 종종 나를 따로 불러 식사를 함께했다.
선물도 사주고,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그가 “넌 참 믿음직하다”라고 말할 때면,
그 말 한마디가 내 하루의 피로를 다 씻어내는 주문 같았다.
그는 나를 특별하게 대했고,
나는 그 ‘특별함’을 인정으로 착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신뢰가 아니라 이용의 시작이었다.
다른 직원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도
나는 무조건 기한 안에 해냈다.
내가 맡은 일은 무조건 완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심지어 내 부하 직원들까지 챙기며, 그들이 욕을 먹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사장에게 혼나는 대신, 내가 대신 감당했다.
‘나라도 막아야지. 그래야 팀이 평안하니까.’
그 마음이,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다.
하지만 사장은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홉 가지를 잘해도, 하나의 실수로 몇 시간을 핀잔주던 사람이었다.
그의 말은 늘 날카로웠고, 그 말은 내 자존감을 조용히 갉아먹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노력했다.
‘내가 더 잘하면 해결될 거야.’
‘조금만 더 버티면, 회사가 나아질 거야.’
그 믿음으로 내 마음의 균열을 덮었다.
이제는 안다.
그건 책임감이 아니라 죄책감이었다.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부족함으로 착각한 것이다.
부정확한 지시, 불공정한 평가, 감정적인 질책까지도
‘내가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야’라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회사의 문제를 ‘내 문제’로 착각하며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었다.
사장이 바뀔까, 회사 분위기가 달라질까—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나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감당을 스스로 떠안으며
점점 지쳐갔다.
결국 내 마음은 회사의 하인처럼 길들여졌고,
사장의 무리한 요구도, 공포로 가득한 사무실의 분위기도
“그래도 내가 버텨야지”라는 말로 덮어버렸다.
그는 내 헌신을 ‘충성’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그의 인정에 목말라 ‘착한 직원’의 가면을 썼다.
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명치가 조여오는 날들이 늘어났다.
아무리 숨을 깊게 쉬어도 공기가 부족했고,
눈물이 이유 없이 흘렀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의 문제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단지, 그 문제를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일 뿐이었다.
책임감은 일을 잘하기 위한 동력이다.
하지만 죄책감은 나를 잠식하는 독이다.
책임감은 ‘함께 해결하자’고 손을 내밀지만,
죄책감은 ‘내가 다 잘못했어’라며 나를 가둔다.
이제는 안다.
회사가 흔들릴 때, 내가 무너질 필요는 없다는 걸.
누군가의 불합리한 요구 앞에서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도
충분히 성숙한 책임감이라는 걸.
그때의 나는 타인을 구하려다 나 자신을 잃었다.
이제는 안다.
회사의 문제를 내 문제로 착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나의 일을 지킬 수 있다는 것.
당신도 혹시, 조직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나요?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책임감은 관계를 살리지만, 죄책감은 당신을 무너뜨립니다.
오늘은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으세요.
_혜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