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의 착각
내가 첫 출근을 한 날,
출근한 나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때 도망가야 했을까?)
출근한 나에게 아무 일도 주지 않았다.
(그때 도망가야 했을까?)
인수인계를 맡은 팀장과 대리는
대표에게 크게 혼이 나고 있었다.
사무실 공기는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뭐지? 이 분위기는… 업무 정리가 전혀 안 되어 있네.)
내 뒷자리에 앉은 대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오늘 뭐 하면 될까요?”
“… 어…”
그 짧은 정적이 이상했다.
‘내가 갑자기 온 것도 아니고,
이미 출근일이 정해져 있었는데,
지금 생각한다고? 뭐지, 이 상황은?’
겨우 하나의 일을 받아 후다닥 마쳤다.
“다 했어요. 또 없어요?”
“벌써요?… 그러면…”
첫날부터 갑갑했다.
나는 그때 아주 대단한 착각을 했다.
‘난 일을 잘할 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사람들은 출근을 해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는 업무를 위한 전화 목소리와
사장의 호통만이 가득했다.
긴장감과 불안함의 공기로 가득했다.
사장은 내 뒤에 앉은 대리에게 다가가
하라는 걸 왜 안 하냐며 퍼부었다.
그건 말이라기보단, 거의 소리에 가까웠다.
그 옆에 앉은 나는 긴장과 불안,
그리고 이상한 호기심이 섞인 마음으로
그 장면을 지켜봤다.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머릿속으로 업무 구조를 파악했다.
직원들은 매일 퇴근 전에
오늘 한 일을 모두 정리해
사장 카톡으로 보고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이거밖에 안 했어?”
“하루 종일 뭐 했어?”
솔직히 무서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버텼다.
나는 왜 그 사장의 욕심에
부응하려 애쓰고 있었던 걸까.
나는 또 착각하고 있었다.
“난 다 할 수 있어.”
혼나지 않으려,
호통의 타깃이 되지 않으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했다.
사장이 하라는 건 다 했다.
해내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한 번의 실수에 쏟아지는 호통이었다.
오전 미팅이 시작되면
2~3시간은 호통과 핀잔으로 흘러갔다.
업무는 밀리고,
밀린 만큼 또 혼났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새로운 직원이 오고, 나가고를 반복했다.
나는 속으로 버티는 나를 대견해했다.
내 마음에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난 아주 심각한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난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
버티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라는 착각
일을 잘하면 인정받을 것이라는 착각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착각
언젠가부터 명치와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은 이물감으로 가득했고,
일을 하다가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무너짐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_혜온
"
괜찮은 줄 알았던 건, 살아내기 위한 방어였을 뿐이에요.
이제는 정말 괜찮아지길, 당신도 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