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성지순례가 내게 주는 의미

by 안흥준

중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한 신앙생활의 청소년기는 믿음 보다는 재미와 호기심이 전부였던 것 같다. 성인이 되니 불현듯 내가 이렇게 찾고 있는 하나님이 대체 나와 무슨 관계가 있고, 어떤 분이길래 내가 이렇게 믿어야 하나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학 입학과 동시에 스스로 기독교 동아리를 찾게 되었고,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 이후 그 때부터 30대까지를 스스로 생각해도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혼신을 다해 살았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러한 열정과 훈련들이 수 많은 정체성 혼란과 시험들이 있었던 40대와 50대를 그나마 버티며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었던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젠 그 마저도 고갈 되어 가고 있어 뭔가 새로운 계기와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갈증이 생기게 되었다. 그 즘에 시니어 성지순례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물론 성지순례를 기획하여 진행하고, 인솔자의 신분으로 참여하는 것이라 성지순례 본연의 목적에 집중할 수만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능한 내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 받는 계기가 될 것을 기도했고, 찾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작은 소망을 들어 주신 듯 하다. 지난 20~30대의 열정은 아니어도 남은 인생 3막을 살아갈 신앙의 에너지원을 찾게 해 주셨다. 시간이 지나면 또 희석 되고, 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삶의 흔적에서도 그렇듯 정말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 성지순례를 통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적어도 내 남은 삶의 신앙 여정은 그래도 괜챦은 모습으로 잘 마무리 할 수 있지 않을 까 싶다.


인생 3막을 계획하며 또 무엇을 해야 하나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 봉사, 헌신, 섬김, 열매…. 익히 들어 왔던 단어들을 내 인생 3막에 어떻게 적용 해야 할 지 고심하다 보니 쉽게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교회 안에서의 나이듬은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기도 했었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치도 않고, 쉽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 속의 메세지는 봉사, 헌신, 섬김, 열매의 단어들이 아닌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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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 지역에 전파 되며, 유럽은 한 때 복음의 중심지이자 진원지가 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되레 선교지가 되어 버린 모습은 순례지 현장 곳곳에 남아 있는 이방신과 주술 그리고 타락한 원인이 되었던 흔적에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순례지의 흔적들은 만들고 세워 가는 것 못지 않게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지를 생각케 하는 것 같았다. 3막의 삶은 지난 젊은 날의 열정을 회복하는 것 보다는 나를 지키고, 묵은지 같은 멋진 신앙인의 모습으로 남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마라톤 경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페이스로 전력 질주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치 인생의 전반을 그렇게 전력질주 해야만 하는 것이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스스로에게 부담을 지웠던 것 같다. 해서 그 동안의 신앙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인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에 살아 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지순례 동안 가장 감동이 되었던 곳은 화려하고 번성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에베소도 아니었고, 장엄한 자연 경관의 경이로움이 있었던 메테오라도 아닌 신앙 생활의 핍박을 받아 피신하며 살았던 괴뢰메 지역과 지하동굴인 데린쿠유였다. 외형적 화려함이 없어도, 드러난 것 없이 꼭꼭 감추인 곳에 있어도 그곳에서는 말 할 수 감동과 은혜가 있었다. 데린쿠유의 지하 동굴로 아이들을 피난 시키던 부모들이 지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내려 보낸 것은 ‘위험이 있을 지언정 그곳에서 신앙의 순수함을 유지하라’는 간절함 때문 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외부의 위험을 온몸으로 또 막아섰다 한다.


이번 성지 순례는 다른 많은 도전과 은혜도 있었지만, 내 미래의 삶인 인생 3막의 신앙적인 방향성을 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내 인생 3막의 신앙은 열정이 아닌 휴식처가 되는 것, 경험과 연륜으로 무엇인가를 해 내는 것이 아닌 필요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부담 없이 기대어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람막이 같은 인생 3막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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