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평일은 안녕하십니까?

by 안흥준

나의 평일은 주일과 이어지는가? 교회밖에서 보여지는 나와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나는 일관된 사람인가? 평일에 만나는 하나님이 주일에 마주하는 하나님과 동일한가? 이러한 자문(自問)을 하게 되는 이유는 교회 안에서 보여지는 경건한 모습과는 달리 교회 밖 생활에서 그 모습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 가정, 사회, 학교에서의 신앙적 환경이 교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들이고, 그 나름대로의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로 인해 경건함을 유지하고 지켜 나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쉽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에 대충 타협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신앙인으로서 일관된 삶의 기준과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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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곳은 다양한 가치와 문화가 만나고, 이해 관계가 얽히며, 사회적 경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우리는 그러한 경쟁과 환경 속에서 살아 남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가기 위해 매일 치열한 경쟁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마주하는 매일 매일의 현실은 우리가 바라는 그런 정의로운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공정하지도 않고, 배려가 넘치는 일상도 아니다. 해서 우리는 매 순간 신앙적 양심과 도덕 그리고 옳다고 여기는 신념(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써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과 마주해야 한다. 그러한 연유로 인해 일상이 안녕한 신앙인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또한 쉽지 만은 않은 일인 것이다.

때론 옳음의 가치(신앙)를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당해야 할 경우도 있고, 무시 당하거나 불편과 소외를 당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는 영성과 명확한 신앙적 판단력이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도 유지 된다면 우리의 평일은 안녕할 수 있겠지만, 그렇치 못한 경우에는 우리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거나, 현실과 손잡고 살아가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모습으로 교회에서 경건한 척 하게 된다. 최소한의 일말의 신앙적 양심의 가책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도 반복이 되면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조차 모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우리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확실하게 경험한 일상이다. 한 주라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았지만, 그러한 한 주가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넘어 가면서 어느덧 온라인 예배가 낯설지 않은 환경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건함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교회 밖에서 대부분 마주하게 되는 환경들은 하나님 중심의 가치가 아닌 인간 중심의 가치와 이해가 앞서기 때문이다. 경쟁, 성공, 효율, 자기 이익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섬김, 겸손, 정직, 경건과 같은 성경적 가치들은 비현실적이거나 비효율적으로 여겨지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교회 밖에서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불편하거나 소외감을 불러오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유를 더하자면, 교회 밖에서의 우리는 지속적인 영적 자양분의 공급을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체성의 근원이 되는 말씀과 기도의 기본적인 일상이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교회 밖에서 단절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연약함이 그 이유일 수도 있고, 반복되는 유혹, 바쁜 일상, 신앙 훈련의 부족 등이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멀리하게 만들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정체성을 잃어 버리며 스스로를 합리화 하며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교회 안에서의 경건한 삶이 교회 밖에서도 유지 되는 것은 빛과 소금의 삶을 만들어 가는 초석이 된다. “앞 뒤가 똑 같은 전화번호”라는 낯익은 광고 카피처럼 교회 안과 밖에서의 일관된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들고 지켜 나가며, 끊임 없는 시행 착오 속에서도 유지하고 회복해야 할 부분이다. 나도 일상에서 하나님 앞에 선 나를 볼 때마다 부끄럽다. 때론 수년전에 그리고 어제 했던 회개의 기도와 똑같은 회개를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 처럼 올바름을 지켜 나가며 살아 가는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적당히 타협하고, 스스로를 합리화 할 영역은 절대 아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고, 어렵더라도 시나브로 개선해 나가야 하는 일상이다.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사전적 의미는 ‘질병이나 약물 등에 의한 환각, 환영, 환청’을 뜻하는 정신의학 용어인데, AI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AI가 정보를 출력해 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혹은 의도적으로 생성되는 허위 정보’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할루시네이션(오류, 거짓)이 너무나 정교해지고, AI 산업이 더 발전하게 되면 사람이 그 오류를 발견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의미는 삶의 환경과 문화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적인 것과 그렇치 않은 것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서 지금은 교회 안과 밖에서 다른 나의 모습 때문에 마음 아파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교회 안과 밖에서 무엇이 잘 못된 것인지 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환경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우리가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고, 지금부터라도 교회 안과 밖에서의 삶이 같아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교회 밖에서의 내 삶의 안녕을 원하다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말씀의 본질로 살아가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평일의 삶이 지속적으로 안녕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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