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짝궁, 치명적으로

by 김봄빛





“어머나, 예뻐라. 네 필명과도 딱이네! 인물 좋고 배경 좋고 옷까지 어쩜 이렇게 예쁘냐!”

“그러게. 천사 납셨다. 엄청 예쁘다~.”

이만큼의 호들갑 즘은 떨어줘야 친구다. 내 카톡의 프로필 사진을 바꿨는데도 여고 동창생 두 명과 같이 하는 카톡방이 조용했다. “얘들아. 나의 바뀐 카톡 대문 사진 어때?”하며 그들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이 전술(?)은 백전불패의 ‘단도직입적 옆구리 공격’이라고 부른다.

친구가 20 킬로그램짜리 쌀 한 포대를 배달시켜 현관 앞 복도에 놓아두었는데 남편도 아들도 그걸 부엌으로 들어다 주지 않더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좀 들여놔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

“아, 좀 알아서 해주면 안 되나?”

매번 똑같은 일로 부탁을 해야 하느냐며 친구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내 보기엔 쌀 포대를 알아서 옮겨주지 않는 남편도 답답하지만, 손대지 않고 코 풀려는 친구도 답답했다. 답답한 놈이 우물 판다고 쌀 한 포대 들어다 주는 일보다 한마디 부탁하는 게 더 쉽지 않은가. 알아서 하는 절이 아니더라도 그 절을 받고 싶으면 옆구리를 찌르면 된다. 나긋나긋하게, 거부할 수 없게 치명적(?)으로 살짝궁~

치사하게 그걸 꼭 부탁해야 하느냐고 친구가 반문했다. 그게 치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치사한 일 아닌가? 남편과 아들의 처지에서 보면 알아서 해주겠거니 하고 한마디 부탁의 말도 없는 아내와 엄마가 어쩌면 더 치사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소통의 문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 말랑말랑한 공격(?)을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자존심 앞세워 콧대 세우다 지레 나가떨어질 일이 아니다. 무심한 남편과 아들은 현관 앞에 있는 쌀 포대가 일로 안 보일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힘보다는 전술에 능한 엄마는 전법을 쓸 일이고 힘이 센 남편과 아들은 힘을 쓰면 될 일이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일 하고 살면 가족 공동체 안에서 그게 분업이지 않은가.

소통은 중요하고 소통의 방법은 더 중요하다. 옛날에 서양 어떤 나라에 사이좋은 노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빵의 바삭한 겉 부분을 좋아하고 아내는 부드러운 속 부분을 좋아했다.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돈독했던 그 부부는 평생 서로가 안 좋아하는 빵의 부분을 먹고 살아야 했다. 서로서로 배려하느라 자기가 좋아하는 빵의 부분을 상대도 좋아하리라 여겨 양보하며 살았던 거다. 진즉에 소통했었더라면 평생 좋아하는 빵의 부위를 먹으며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배려도 소통 후에 할 일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무슨 배려를 하겠는가. 하물며 부탁은 오죽할까.

알아서 배려해 주지 않는다고 입 빼물고 있을 일이 아니다. 옆구리라도 살짝궁 예쁘게 찔러보자. 옆구리 찌르기 신동이 되어도 좋을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 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