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봄빛
지난여름, 미국 방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딸은 내게 두 권의 책을 선물해 주었다. 그중 하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미술가이며 작가, 영화 제작자인 숀 탠Shaun Tan의 도착(The Arrival)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연필로 섬세하게 그린, 구석구석 알뜰히도 작가의 공이 서려 있는 그림책이었다. 활자 하나 없이 오로지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그 책은 독자의 눈으로 보고, 독자의 마음으로 각자만의 해석과 감동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어쩌면 활자가 빼곡한 책보다 독자의 마음에 더 빼곡한 감동을 안길 수 있는 책이었다. 작가 자신도 이민 가정 출신이기에 그는 이 책을 그의 부모님께 헌정하였다.
한 가장이 가족을 고향에 두고 먼 나라로 먼저 떠나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마침내 딸과 아내를 불러들여 새 터전에서 재회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빠가 떠날 때 가족의 슬픔, 두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아빠, 모두가 재회했을 때의 행복감, 새 장소에서 적응하기 위한 노력 등이 잘 묘사된 책이었다. 작가는 가장이 떠나간 그곳을 마치 지구가 아닌 외계처럼 그려냄으로써 이민 생활의 지대한 고충을 설명하려는 듯했다. 새로운 곳에서 웬만큼 생활에 적응한 그 집의 어린 딸이 막 그곳에 발을 디딘 사람이 묻는 말에 친절히 대답해 주는 장면으로 의미 있는 끝을 맺는 책이었다. 지면의 한계가 있는 책은 거기서 끝이 났지만 책이 암시하듯이 인생은 수레바퀴 돌 듯 돌아가고 이민자의 삶 역시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새 글 익히랴, 새 문화 배우랴, 새 일까지 터득하자면 웬만큼 노력해선 턱도 없을 터. 지나와 돌아보니 내가 그런 삶을 살아왔다는 게 마치 남의 삶을 보는 듯 신통하다.
미국에서 부동산 매매를 업으로 하고 있던 나는 2010년 그곳의 집값이 바닥을 친 후 경매로 집 하나를 산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경매를 공부하던 때라 조심스레 실전에 임한다는 자세로 집을 찾았고 경매 물건은 100퍼센트 현금으로 사야 했기에 그리 비싸지 않은 집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경매에 나온 집은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모게지Mortage를 못 내서 집을 잃을 입장에 처한 사람이 자기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을 공개할 리 없지 않은가. 집 외관만 보고 내부를 짐작할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했다.
지도를 펼쳐 들고 집 100채는 족히 보고 다닌 듯했다. 붉은 벽돌로 나지막이 담장을 쌓아 앞마당과 보도의 경계를 지어놓은 맘에 드는 집을 찾았다. 망설임 없이 은행으로부터 그 집을 샀다. 문제는, 이제 내가 집의 새 주인이라고 알리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내보내는 거였다. 자기 집에 잘살고 있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내가 새 주인이 되었으니 나가 주시오’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옛 주인을 퇴거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소 강압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내쫓기 때문에 집을 잃은 이들에게 그런 방법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은행으로부터 집을 넘겨받은 다음 날,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어제까지 그 집의 주인이었던 남자가 나왔다. 서류들을 보여주며 여차저차해서 내가 당신의 집을 은행으로부터 인수하였으니 이사를 나가 주십사 했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집 내부는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고 가족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그곳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흘러나왔다. 집 안에서 건네져 오는 따스함과는 반대로 내 말을 들은 가장의 표정에선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싶은 서늘한 절망감이 베어져 나왔다.
‘아! 나는 어쩌자고 이 일을 시작했던가!’ 경매로 나온 집을 사면 얻어지는 경제적인 이익에 눈이 어두워 집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과 상황은 깊이 헤아려 보지 못했다. 어떻게 그들로부터 집을 인수 할지에 대해 걱정해 보긴 했으나 이 일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냉혈한, 남의 가슴을 도려내듯 보금자리를 빼앗는 일이란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은행에 내야 할 모게지를 못 냈고, 나는 은행이 요구하는 대금을 지불하고 집을 인수했으니 아무 문제 없는 정당한 거래였으나 사람의 가슴으로 볼 때면 절대 정당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할 일이었지만 하필 내가 그 일을 골라서 자발적으로 할 일은 아니었다. 집을 잃은 이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내 마음도 편하지 못했다. 그 집의 가장과 아내는 그들보다도 나이 어린 내게 한차례 눈물도 보였다. 명문 대학에 다니던 아들과 함께 살고 있던 그 집의 가장은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내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그의 아들과 내가 함께 하는 자리에선 언제나 젊잖은 태도를 유지했다. 아들의 눈에는 항상 바르고 훌륭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한 아버지의 안간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들은 두 달을 더 그 집에서 살았고, 나는 현금으로 그 집을 샀기에 모게지와 이자 납입의 압박 없이 기다려줄 수 있었다. 빨리 세 놓을 수 없으니 그만큼의 이익만 포기하면 되었다. 보금자리를 잃은 앙갚음으로 집을 고의로 파손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은 집을 잃게 되면서 많은 손해를 감내해야 했다. 우선, 집을 샀을 때 융자를 받은 부분을 제외하고 선납한 수십만 불(수억)을 그냥 잃어버렸다. 은행이 그 돈을 삼켜버린 거다. 집값이 많이 내려갔으니 손해를 최소화하자면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며 그게 법이기도 했다. 자資가 본本이 되는 자본주의 아닌가.
포르투갈인이었던 그 집의 옛 주인은 미국이란 낯선 땅으로 건너와, 딸이 내게 선물한 책 속의 이민자처럼 온 힘을 다하여 살았을 것이다. 집도 사고 아들 공부도 시키며 잘 적응하는 듯했으나 ‘프라임 모게지 사태’라는 복병을 맞아 알뜰살뜰 장만했던 그들의 집을 잃었다. 자기 나라 땅에 살면서 엎어지는 사람도 많지만 남의 나라 땅에 살면 엎어질 확률이 더 높다. 이민자로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왔을 그들의 지난날이 물거품이 되어 꺼져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두 번 다시 경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간 공부하여 터득한 ‘노하우’가 아까웠지만, 그 일을 이어 가면 꽤 괜찮은 이익도 챙기겠지만 벼룩의 간을 내먹는 그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 아무리 언젠가는 깨질 쪽박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 쪽박을 깨는 일에 발 벗고 나설 일은 아니었다. 쪽박 간수, 더욱이 이민자의 쪽박 간수는 더 힘든 거였다.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미국은 누구에게나 그 기회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인人이 본本이 되는 세상은 정녕 꿈속의 유토피아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