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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운 선녀님

by 김봄빛

동화 작가 고정욱 선생의 270권이나 되는 저서 중에 『가방 들어 주는 아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소아마비로 목발을 짚은 초등학교 2학년인 영택이와 같은 반, 같은 동네에 사는 석우의 우정을 그린 가슴 따뜻해지는 동화다. 7살 때 열병을 앓은 후 다리가 불편한 내게도 가방을 들어 주는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늦은 가을날 불청객처럼 찾아온 열병은 목 아래부터 나의 전신을 마비시켰고 서서히 회복한 상체와는 달리 내 걸음은 보기에 안정적이지 못했다. 3학년이 된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같은 반 한 남자아이에게 하굣길에 내 가방을 들어주라고 부탁하셨다. 그 아이 집은 우리 집에서 100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자기 아이만 귀한 요즘은 제 아이에게 웬 시답잖은 부탁이냐며 고소 운운할지도 모르지만 그땐 그 정도 부탁쯤은 할 수도 있던 푸근한 시절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박ㅇㅇ. 나는 아직도 그 아이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한다. 커다란 그의 눈망울은 선하디선해 보였고 행동이 곧아 믿음직했다. 말수가 적은 그 아이와 나는 내 걸음으로 15분 거리의 하굣길을 같이 걸으면서도 몇 마디 말을 나눠 본 기억이 없다. 그는 그저 묵묵히 어눌한 내 걸음에 자신의 보폭을 맞춰 느리게 내 곁에서 내 가방을 들고 걸어주었다. 후에 그는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단 말을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다. 마침 남편의 친구 중에 서울대 의대 출신이 있어 그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 병원의 내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도 듬직하더니 그 성품이 어디 가겠나. 지금도 역시 듬직하게 살고 있는 듯했다. 흐뭇했다.

내 친구에게는 특별한 자질이 있어야 한다. 그건 나와 발맞출 수 있는 선한 마음이다. 고등학교 때 나의 절친이었던 진희는 내가 30년 객지살이를 하고 돌아온 지금도 나의 절친이다. 남의 비보(悲報)에 금세 예쁜 두 눈에 눈물이 글썽해지는 맘 착한 친구. 강남 사모님이지만 고속버스 아래 칸에 실린 내 짐을 모피코트를 입은 채 허리 숙여 꺼내주는 친구. 괜찮대도 기어이 내 차 문을 열어주고 차에 오르고 안전띠까지 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내 차 문을 닫아주는 친구. 영숙이는 힘든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 대학 시절부터 절친이었다. 어리벙벙한 내가 손수건을 떨어뜨리면 그 손수건을 주워주고 우산을 두고 오면 말없이 챙겨왔다. 그녀는 대학 시절 내내 학교에서의 내 엄마 같은 존재였다. 성아는 내가 짐을 들고 버스를 타야 했던 어느 날, 버스 위까지 짐을 들고 따라 올라와 나를 앉혀주고 ‘기사님, 잠깐만요!’를 외치며 황급히 시내버스에서 내렸던 친구다. 내겐 모두 천사요 선녀들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한때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나란히 합격했고 입학 후 한동안 붙어 다녔다. 교양과목 수업은 넓은 교정의 건물들을 돌아다니며 수강해야 했는데, 한 수업이 끝나고 바로 다음 수업이 다른 건물에서 있을 때면 난 항상 허둥대야만 했다. 10분 만에 내 걸음으로 다른 건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면 그 친구는 저만치 먼저 가서는 뒤돌아서서 나를 기다리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나의 느린 걸음이 불편했고, 나는 그녀의 조바심치는 행동이 불편했다. 나는 그녀와 멀어졌다. 너무나 다행히도 나를 챙기며 내가 수업에 늦으면 기꺼이 함께 늦을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들이 몇몇 곁에 있었으니 얼마나 큰 복이었던가!

돌아보면, 나는 많은 사람에게 빚을 졌다. 온전히 내 힘으로 살아온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수년 전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던 날. 친구들이 나를 알아보고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시화전에 출품했던 내 작품이 어떠했더라는, 나도 잊고 있었던 얘기들을 했다. 내 불편한 다리 때문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할 줄 알았는데 왜 다른 공부를 했느냐고도 물어왔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 내가 살고 있었고, 그들은 내 불편한 다리에도 이따금 염려를 보냈나 보다. ‘그 덕에 내가 여태껏 별 큰 탈 없이 살고 있구나’ 싶었다.

영숙이와 성아가 지금 암과 투쟁 중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유방암이란다. 영숙이는 투병 중에 만나보았지만, 몇 달 전에 암 소식을 전해 온 성아는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 무엇이 그리도 바빠 내 소중한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데 아직 그녀의 얼굴 한번 보러 가지 못했단 말인가. 배은망덕이 따로 없다. 다음 주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얼굴을 보러 가리라! 내 고운 선녀님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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