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봄빛
미국 집에 가 봐야 할 일이 생겼다. 때마침 남편도 출장 갈 일이 있어 같이 가려고 남편의 일정이 나올 때까지 비행기표 예매를 미루고 있었다. 기다리던 일정이 나왔으나, 남편의 출국 날짜와 맞추자면 미국에서의 내 일이 늦어져 내가 먼저 출발 해야만 했다. 부실한 아내를 혼자 보내는 남편의 마음도, 혼자 떠나야만 하는 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지만 공항의 훌륭한 휠체어 서비스 덕에 마음이 좀 놓이긴 했다. 남편이 출국 수속을 다 해줄 거고 내리면 내 아이들이 마중을 나와 있을 터. 비행기 안에서만 별일 없으면 될 일이었다. 열흘 후면 미국에서 볼 남편이지만 늘 2인 1조로 움직이던 우리는 공항에서의 이별이 짠했다. 검색대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승무원 전원 착석하십시오.”
안전띠를 매라는 표시등에 불이 켜지고 조종석에 앉은 기장의 말이 들려왔다. 비행기는 한동안 흔들렸다. 심장이 쪼그라들다 못해 아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무수히 다녀도 극복되지 않는다. 비행기 안에서는 늘 마음이 편치 않다. 특히 이착륙 시와 난기류로 비행기가 흔들릴 때면 더 그렇다. 누구는 자기에게 컨트롤이 없는 일엔 마음을 비우고 오히려 태연해진다는데, 난 내게 통제권이 없는 일엔 더 불안해진다.
다행히 비행기도, 나도 큰 문제 없이 태평양을 거의 다 건넜다. 착륙 1시간 전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는데 줄이 있었다. 내가 두 번째 차례였다. 내 뒤에 줄을 선 아가씨는 170 cm가 넘어 보이는 큰 키에 몸매가 탄탄했다. 머리카락이며 피부색이 한국인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녀는 화장실 바로 앞 좌석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내 뒤에 줄을 섰으므로 그녀보다 몇 열 앞에 앉은 내가 불안한 걸음으로 비행기 좌석의 등받이를 옮겨 짚으며 화장실을 향해 가는 걸 다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아까 화장실에 갈 때도 내 뒤에 줄을 서더니 이번에도 똑같이 그랬다. ‘나보다 훨씬 큰데 방광의 크기는 나랑 같은가?’ 속으로 생각하며 웃음이 살짝 삐져나왔다.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어색함을 깨려고 말을 걸었더니 한국말을 하는 한국인이었다. 요즘 내가 이상해졌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아주 쉽게 말을 건다. 나이가 들어 생긴 현상인가 보다 한다.
볼일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오던 순간 내가 균형을 잃을 뻔했다. 비행기가 잠깐 흔들린 건지 내 스스로 균형감을 잃은 건지 모르겠다. 그 순간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아가씨가 나를 그녀의 두 팔로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
“괜찮아. 괜찮아.”
비틀한 나보다 그녀가 더 놀란 눈치였다. 그녀에게 고맙단 말을 하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그녀가 내게 한 말이 자꾸 되뇌어졌다. 그건 어떤 생각이 있어 정리되어 나온 말이 아닌, 순간적으로 나를 부둥켜안으며 튀어나온 그녀의 본능적인 말이었다. 말과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었거니와 정리를 했더라면 ‘괜찮아’가 아니라 ‘괜찮아요’였을 거다. 그녀의 ‘괜찮아’란 말은 ‘내가 너를 잡고 있으니 너는 안전해. 걱정 마’의 준말이었다. 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말, 배려의 말 바로 그것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화장실을 향해 걸어갈 때부터 쭉 나의 불편한 다리를 예의 주시하다가 일부러 내 뒤에 줄을 서서 나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여차하는 순간을 대비하려 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지난번 화장실에 갔을 때도 내 뒤에 줄을 서지 않았던가. ‘뭐 그렇게까지야’ 싶을 수도 있지만 세상엔 그런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그런 사람이기에 나는 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은 내가 비틀거릴 낌새를 눈치도 못 챌 그 짧은 찰나에 나를 그렇게 부둥켜안을 수가 있었을까?
미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물건을 살 일이 있어 건축자재를 파는 커다란 가게에 들렀는데 마침 내가 찾는 물건이 가게에 없어 주문을 해놓고 와야 했다. 보통 사람들은 잠시 주문할 동안 서 있어도 그만이지만 보행기에 의지하여 걷는 나를 보고 주문을 받는 직원이 내게 의자를 내주었다. 그 직원도 오른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한사코 자기 의자를 내게 양보하였다. “우리 같은 처지네요”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요” 인사를 하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찰나 의자가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 직원이 엉덩방아를 찧을 위기에 처한 나를 붙들어 안아 올렸다. 그녀는 젊고 나보다 체격이 좋았지만 갑자기 어디서 바닥에 거의 주저앉을 뻔한 나를 껴안아 세울 힘이 났을까? 게다가 한쪽 발에 깁스까지 한 상태였는데 말이다.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그녀는 짚고 있던 목발을 팽개치고 그 짧은 순간에 나를 구했다. 그녀의 깁스한 발은 괜찮으려나....
그녀들의 행동과 말이 한없이 크게 느껴졌다. 위험한 상황에서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웅들은 화장실 앞 그녀와 건축자재 가게의 직원과 같은 사람이리라. 그녀가 크게 느껴지는 만큼 내가 작게 느껴졌다. 불편한 내 몸이 먼저 나갈 순 없다 해도 과연 내 마음은 사람들을 향하여 그녀만큼 열려 있을까? 재고, 따지고, 살펴보느라 때를 놓치고 상황도 놓치는 게 아닐까? 때깔 좋은 속 빈 강정 같은 말만 내뱉고 사는 건 아닐까? 진짜가 아닌 가짜, 알맹이가 아닌 쭉정이로 사는 건 아닐까? 나 괜찮은 거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