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

두려움 이겨내기

by 튜머

올해 기대작 중 하나인 부고니아를 개봉 당일에 보았습니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2025년, 기필코 지구를 지켜라!

벌들은 사라지고, 지구는 병들고 있고, 인류는 고통받고 있다.

거대 바이오 기업의 물류센터 직원인 ‘테디’는 이 모든 것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외계인의 지구침공 계획 때문이고, 사장 ‘미셸’이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굳게 믿는다.

오랜 준비 끝, 함께 사는 사촌 동생 ‘돈’과 함께 결국 ‘미셸’을 납치하는 데 성공한 ‘테디’

그는 지하실에 ‘미셸’을 감금한 채 지구를 찾아온 이유와 앞으로의 음모를 캐묻지만

자신은 외계인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는 ‘미셸’

과연 ‘테디’는 ‘미셸’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고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고약한 영화로 컬트적인 인지도가 있는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인 이 작품은, 두 색깔 강한 감독이 각각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아리 에스터 연출인데요.
둘 다 독특하고 불편한 감정선을 다루는 데 능한 감독들이라, 이들의 협업은 그야말로 ‘고약함의 삼중주’라 불릴 만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치를 완전히 뛰어넘지는 않았지만 꽤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두 감독의 색채가 명확히 드러났고, 서로의 장점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습니다. 란티모스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 기괴한 미장센, 그리고 웅장한 음악 연출이 건재했고, 아리 에스터의 강점인 명암을 활용한 위화감, 심리적 밀도, 그리고 (스포일러) 페티시적 이미지의 집요함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원작이 있는 영화이고, 저는 원작을 보았기 때문에 원작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플롯 자체는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만, 결말은 리메이크 쪽이 훨씬 세련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힘을 많이 준 게 느껴졌어요. 다만, 원작의 엽기적 고문씬이나 컬트적 분위기를 기대하신다면 다소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절제된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 부분이 싫었던 사람은 장점이 될 수 있겠죠. 잔혹한 장면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난해함이 줄어든 대신, 인물들의 대사로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같이 보러 간 친구는 교조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볍게 보기 좋았습니다.


원작과 다르게 주요 인물들이 대거 줄었는데 대사의 양은 줄지 않아 이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 세명인데(테디 미셸 도니) 도니는 대사가 적어 거의 두 명이 해결합니다. (등장인물은 부고니아가 훠어어얼씬 많습니다)

물론 두 주연배우인 제시 플레먼스와, 엠마 스톤의 연기는 훌륭했습니다. 테디의 조수인 돈 역시도요. 특히 엠마 스톤의 역할이 역할인지라 고생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원작을 이미 본 저로서는 자연히 비교하게 되었지만, 이 영화는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감상하는 걸 더 추천합니다. 핵심 플롯이 겹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니’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재미가 꽤 큽니다.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른 작품은 세 가지입니다.

《곡성》( 특히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더더욱) ,《퍼니 게임》 , 그리고 물론 《지구를 지켜라》입니다. 고약함의 원천이자 모든 시작점이죠.


요약하자면, 《부고니아》는 고약함을 세련되게 재구성한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의 충격 대신, 불안과 위화감을 미학적으로 조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대중적이면서도 여전히 불편합니다.

두 감독의 팬이라면, 각자의 색채가 선명히 드러나는 장면마다 즐거움을 느끼실 겁니다.

원작을 본 관객이라면, 리메이크 속에 녹아 있는 오마주를 찾아내거나,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반대로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플롯 자체가 주는 신선함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에서 오는 긴장감을 그대로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줄 느낀 점과 함께 글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차세대'라는 단어가 쉽게 붙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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