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극복하기
가을은 은행의 계절이다.
동네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내 동네는 은행나무로 도배되어 있다.
이들은 다른 계절엔 미세먼지를 삼키고 맑은 공기를 뱉으며, 그늘조차 아낌없이 주지만, 가을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들은 마치 복수라도 하듯,
모든 동물 통틀어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섭취하는 독성종자를 온 동네에 휘갈겨버린다.
보도블록에 나뒹구는 그 물렁한 것들은 원래의 목적인 종의 번식이 이미 불가능하며,
무지각한 사람의 발에 밟혀 짓이겨진 채로 고약한 악취를 내풍기거나, 혹은 아직 온전한 형태로 노란 잎 뒤에 숨어 또 다른 잠재적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천고마비의 계절에도 땅을 보고 다닐 수밖에 없으며, 그렇지 않으면 신발 밑창 사이의 틈만 배불리 채울 뿐이다.
이 인도에 펼쳐진 사랑의 흔적들은 과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바닥을 보고 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그 인파들을 피하기 위해 포인 자세로 갖가지 고난도 발레 동작을 선보여야 한다.
이 동작들은 말 그대로 고난도 이기 때문에, 숙련자가 아니라면 약간의 실수는 자주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이 고약한 심사위원들은 자비가 없다.
이들은 작은 실수에도 가차 없이 혹평하며, 이 평가들은 징표처럼 새겨져 공연 뒤에도 집, 혹은 직장에서 친구, 동료, 가족의 멸시를 받아 악몽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결국 혹자처럼 블랙 스완으로 잉태하거나, 극복하지 못하고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다고 해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악취의 증표를 피했을 뿐, 피로스의 승리와 같다.
이후로도 거리를 지날 때마다 끊임없이 즉흥공연을 해야 할 것이고, 수많은 공연 끝에 결국 거북목을 얻은 상태로 겨울을 맞게 될 것이다.
또한 이상 기후로 가을의 한파가 닥쳐 영하를 맞게 된다면, 이 은행 과육들은 얼어붙으며 이른바 '아이스 홍시' 상태로 진화하게 된다.
짓이겨진 과육들이 빙판길을 형성해, 자기들 멋대로 동계 올림픽을 계최하는 것이다
출전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
은행나무의 암수를 구분할 기술이 생기기 전에 세워진 도시라면 더욱 그렇다.
어릴 때 운동회가 끝난 뒤 먹던 아이스홍시는 달콤한 보상이라면, 이 올림픽은 고약한 아이스 홍시를 먹지 않기 위한 발악에 가깝다.
11월 초에 영하를 찍은 오늘, 혹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공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신발 밑창의 냄새 샤베트들이 녹기 시작해, 문장을 쓸 때마다 은은히 퍼져 나온다.
참 수치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