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하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에 그렇게 쉽게 열광하는가

by 김현정

오늘 아침 출근길, 옆자리 직원이 두쫀쿠 이야기를 꺼낸다.

아들이 사줬는데 너무 맛있었다며, 우리도 주문해 먹자고 한다.

이미 알고 있다.

지금 이 음식이 유행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연일 기사들이 쏟아진다.

재료값은 몇 배로 올랐고,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줄을 서는 사람들 대부분은 남자들이라는데

그 이유는 대개 여자친구를 위해서란다.

맛보다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소비되는 음식.


연예인도 먹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별로라 했고, 누군가는 극찬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음식이 아니라

그 연예인의 ‘평가 태도’를 다시 평가한다.

말 한마디가 감각을 증명하는 자격증처럼 취급된다.


열광은 늘 같은 방식으로 유통된다.

좋다는 말이 먼저 돌고,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서둘러 합류한다.

좋아해서가 아니라

참여하지 않으면 소외될 것 같아서.


얼마 전 한 셰프가 그랬다.

화통한 말투, 뛰어난 실력.

사람들은 그의 요리를 따라 하며

그를 하나의 캐릭터로 소비했다.

그러다 과거가 드러나자

이번에도 사람들은 방향만 바꿔 몰려들었다.

칭송하던 속도로 비난했고,

비난은 개인을 넘어 가족에게까지 번졌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이미 익숙한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언가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의견은 갖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선택해 얹는 것이 되었고,

우리는 생각하기보다 반응하는 데 능숙해졌다.


열광도 비난도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깊지 않기 때문이다.

삶을 붙들 여력이 없을수록

감정은 남의 이야기 위에 얹힌다.

그래서 더 뜨겁고, 그래서 더 빨리 식는다.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함께 흥분하고 함께 분노하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을 주기 때문에.


이제는 이런 소비가 지겹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일상만큼이나

실시간으로 생산되고 폐기되는 감정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선택이

가장 사치스러운 태도처럼 느껴진다.

모든 열광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용기,

모든 분노에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그것이 지금 같은 시대에

우리가 겨우 붙들 수 있는

최소한의 사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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