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감정이 다시 환영받는 시대를 바라며

by 바람결

요즘 사람들은 글을 읽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긴 글’을 읽지 않는다.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시간보다, 반응하는 시간이 훨씬 짧다.
세상은 점점 더 속도를 높이고, 감정의 표현은 그 속도에 맞춰 압축되고 있다.

문장 부호를 쓰면 나이가 표가 난다고 말하는 세상.
그런 시대에서는 말이 길면 구차해지고, 마음이 길면 ‘감성돋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쿨하다’는 말은 여전히 칭찬으로 쓰이지만, 실은 감정을 감추는 또 다른 방패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이제는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감정은 표현하지 않아야 어른스러워 보이고,
‘느낌’은 느끼한 것이라 사적인 것으로 남겨야 한다는 무언의 합의가 이미 굳어졌다고 믿었다.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말하지만,
정작 ‘마음’은 덜 드러내는 아이러니.
그게 시대의 문법인 줄 알았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 놀랐다.
이곳에는 아직 긴 문장과 느린 마음이 남아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감정을 꺼내놓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문장들을 조용히 읽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서는 “오그라든다”는 말 대신 “좋아요”가 남았고,
댓글보다는 ‘공감’이, 반박보다는 ‘기억’이 남았다.
누군가의 삶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독자들.


그게 브런치의 공기였다.

사람들은 흔히 “감성 글은 식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감정이 낯설어진 세대’가 내는 반사음 같다고 생각한다.
너무 오랫동안 쿨해야 했고, 너무 오래 무감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감정’이 아니라
‘잃어버린 감정의 복원’인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어쩌면 그 복원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조롱하지 않고, 누구도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작은 공간.
자극적인 장면 대신, 문장 사이의 숨결을 좋아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기에 글을 써 본다.
지금처럼 감성이 넘쳐 조금 오그라들어도 상관없을 거다.
감정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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