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조건

인간을 '인격'으로 본다는 것에 대하여 - 이야기의 시작

by 바람결

인간과 인간이 완전한 1:1의 상태에 있을 때,
내가 상대를 하나의 완전한 인격으로

나와 동등하게 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관계에서는 ‘나’와 ‘너’가 분명히 존재하고,
서로의 세계가 인정된다.

반면, 상대를 그저 ‘대상’으로 대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세계 속, 내 시선이 만든 하나의 오브젝트가 된다.
모든 비극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타인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그를 나의 의식 안에 있는 하나의 ‘요소’로 격하시킨다는 뜻이다.
그는 더 이상 독립된 존재가 아니며,
나의 판단과 행동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인격적으로 대할 필요도, 존중할 이유도 사라진다.
결국 나는 그를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을 ‘인격’으로, 나와 동등하게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조심스러워진다.
상대가 나처럼 고유한 세계를 가진 존재임을 인지하게 되면
존중과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된다.

나에게 세상이 있듯, 그 사람에게도 세상이 있다.
내 세상에 큰 무리가 없는 한, 상대의 세상을 인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것이 이해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대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교집합을 가지려면, ‘관계’가 필요하다.
관계란 서로의 세계가 맞닿는 최소한의 접점이다.
그 접점에서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를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상을 인정하고, 그와의 관계 속에서
내 세계의 일부를 내어주는 행위다.

반대로, 누군가를 단순히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그는 내 세계의 일부로 소비될 뿐이다.
대상에게는 존중이 필요 없고, 관계 설정도 필요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신이 대상화하던 존재가
갑자기 ‘인격’으로서 존중받기를 요구하는 순간
극도의 혼란과 불편함을 느낀다.
그때 표출되는 공격성, 폭력성은 바로 그 혼란의 산물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인격으로 보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여전히 ‘대상’으로 대하고 있을까?


어쩌면 타인을 인격으로 본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수많은 문제는,
결국 이 문제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딱! 하는 순간 반짝,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