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이신 피천득 선생은 "사랑이란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라 했다. 식탁에 같이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는 가장 친밀한 행위다. 그런데 이런 사적인 일이 때로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곤 했다. 차 한 잔, 육포 한 조각이 제국의 운명을 좌우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다.
18세기 영국인들에게 차는 그냥 음료가 아니었다. 산업혁명 시대, 공장의 매캐한 공기와 긴 노동시간 속에서 차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귀족들의 오후 티타임은 물론이고, 노동자들도 아침마다 설탕 넣은 홍차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일상적 풍경 뒤에는 꽤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차는 오직 중국에서만 살 수 있었고, 중국은 은으로만 값을 받았다. 영국의 은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면서 무역적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영국이 택한 방법은 비열하게도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파는 것이었다. 차를 사려고 아편을 팔았고, 중국인들이 아편에 중독되자 청나라 정부가 단속에 나섰다. 그러자 영국은 무력으로 맞섰다. 1840년 아편전쟁이다. 결국 한 잔의 차가 제국주의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청나라는 굴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다.
대서양 건너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차가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1773년 보스턴 항구에서는 시민들이 영국 상선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영국이 동인도회사에 차 독점권을 주고 식민지에 세금을 매기자, 식민지인들은 "대표 없는 과세는 부당하다"며 저항했다. 차를 버리는 행위는 곧 제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었다. 2년 뒤 총성이 울렸고,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같은 차인데 한쪽에서는 제국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를 쟁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차 자체는 그저 음료였지만,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망과 선택이 전혀 다른 역사의 모습을 만들어낸 셈이다.
음식이 역사를 만든 건 차만이 아니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인구 100만도 안 되는 유목민 집단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할 수 있었던 데에도 음식이 한몫했다. 몽골 기병들은 말 안장 밑에 말린 육포를 넣고 다녔는데, 말 위에서 그대로 씹어 먹기도 하고 간단히 끓여 먹기도 했다. 먹는 데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기에 그들은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보급이 최소화된 군대, 멈추지 않는 기병대, 말린 고기 한 조각이 군대의 전진 속도를 결정하였다.
이렇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결국 무엇을 어떻게 먹고 마셨는가의 기록이기도 하다. 차는 영국을 움직이는 에너지였고, 미국 독립의 씨앗이었다. 육포는 몽골 기병의 날개였으며, 함께 나눈 밥상은 친밀함의 증표였다. 피천득 선생의 말처럼 저녁밥을 함께 먹는 게 사랑이라면, 한 사회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는 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그냥 배를 채우려고 먹는 게 아니라, 먹는 방식을 통해 세계를 만들어온 건 아닐까?
차 한 잔에 담긴 건 단순히 찻잎의 향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제국의 욕망, 자유에 대한 갈망, 일상의 위안이 함께 우러난다. 우리가 오늘 마시는 차도, 어쩌면 언젠가 누군가의 역사 속 한 장면이 될지 모른다. 먹고 마시는 일은 그만큼 사소하면서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