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도 예의라는 것이 있다

by 시온

올해 8월에 65세가 되신 지인께서 기초연금을 신청했는데, 10월 하순까지 아무 소식이 없어 어렵게 담당자를 찾아 전화를 했다.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때가 되면 연락 갑니다. 기다리세요."


10월 초, 나는 특정 앱을 통해 국세와 지방세 환급을 신청했다. 앱에는 '환급 예정'이라는 표시가 떴고, 수수료도 미리 냈다. 그런데 3주가 지나도록 상태는 그대로였다. 국세청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신청은 되어 있고요, 계산하는 데 3달 이상 걸리니 내년 1월 이후 때가 되면 연락이 갑니다." 두 경우 모두, 기다림은 오롯이 시민의 몫이었다.


요즘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빠르면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한다. 어제 클릭한 세제가 오늘 현관 앞에 놓여 있고, 저녁에 주문한 치킨이 30분 만에 온다. 택배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지, 내가 주문한 치킨을 실은 모토 사이클이 어디에 있는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다림이 가시화되면 사람들은 조금 더 참을 수 있다.


그런데 공공 서비스의 기다림은 막연하다. 기초연금 신청 후 두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고, 세금 환급은 3달 이상 걸린다고 한다. 지금 내 신청 건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때가 되면 연락 간다'는 말 외에는 들을 수 있는 게 없다.


물론 공공과 민간의 목적이 다르다는 건 안다. 민간 기업은 속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지만, 공공 서비스는 정확성과 공정성을 우선한다. 빠르게 처리하다 실수가 생기면 더 큰 문제가 된다. 느리더라도 정확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확성과 속도가 꼭 반비례해야 할까? 기술이 이만큼 발전한 시대에, 시스템 개선을 통해 둘 다 잡을 수는 없는 걸까. 당장 처리 속도를 높이기 어렵다면, 최소한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의 답답함은 줄어들 텐데…


민간의 효율과 공공의 신중함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단순히 속도의 차이가 아니라, 시민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천천히'를 말하는 건 신중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천천히가 불투명하고 소통 없는 기다림이라면, 그건 신중함이 아니라 무관심에 가깝다.


기다림에도 온도가 있다. 이유를 알고 하는 기다림과 그저 막연히 하는 기다림은 다르다. 공공 서비스가 시민에게 요구하는 건 납득할 수 있는 기다림이어야 하지 않을까 ? 때가 되면 연락이 간다는 말 대신, 지금 어느 단계이고 언제쯤 완료될 예정이라는 정보를 주는 것. 그게 시민을 기다리게 만드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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