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반팔티, 지금은 재킷과 후드, 2주 뒤는 패딩
난 내가 추위에 상당히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좀 강한 거 같다.
하지만 추위를 평상시 보다 더 느끼는 경우가 있다.
바로 방심할 때. 그게 바로 요즘이다.
그래도 나름 좀 긴팔로 입어버리면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이제 점점 두꺼운 옷과 이불을 꺼내고
전기장판도 슬슬 깔아 둘 때가 오는 것이 느껴지는
이 가을이라는 계절. 너무 짧아 아쉽다.
짧아 아쉬운 이 계절을 좀 더 짙게 즐길 수 있는
음악들이 있으면,
아쉬운 마음을 더 달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힙합을 들으면 아마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가을 하면 생각나는 음악들이 무엇일까?
아마 어쿠스틱 기타가 가미된 노래 혹은
느리고 서정적인 노래가 떠오를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필자도 가을 하면 힙합이 바로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힙합도 가을에 즐길만하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고 싶어서 몇 가지 키워드들과 걸맞은
앨범들을 한번 들고 와봤다.
그럼 시작해 보자
1. <사랑은 노래와도 같이 : Love is a Song> by 던말릭, 드비타
"가을 속 사랑"
R&B는 힙합과 정말 잘 어울리는 장르다.
둘이 어우러졌을 때 모난 부분을 부드럽게,
무딘 부분을 날카롭게 해주는 조화를 보여준다.
이 앨범도 그렇지만, 뭔가가 더 있다.
단순히 상보적인 관계 이상인 듯 한 앨범이다.
커플이 만든 이 앨범에선 미니멀한 비트 위
올라가는 드비타와 던말릭의 목소리는
비트가 마치 바뀌는 듯한 한 곡 안에서의 변화를 일으킨다.
서늘하고 미니멀한 비트 위.
따뜻하며 뜨거운 듯한 두 사람의 조화.
두 사람이 만들며 느낀 즐거움이 보이는,
이게 가을 같은 사랑 아닐까.
추천곡: White T, 춤, DAP, name cost, Pornography
2. <The Spoiled Child : 균> by 쿤디판다
"썩어가는 낙엽"
가을에 지는 낙엽을 보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보고 감성에 젖기도 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썩어가는 낙엽을 보며 냉소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쿤디판다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 참신한 언어,
미니멀한 재즈 비트들로 그 냉소를 전달한다.
찬 바람이 불 때 듣는 맛이 더 좋아지는 이 앨범.
썩어가는 낙엽이 당장은 흉하고 더럽겠지만,
다음 계절을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 되듯이,
쏟아낸 음흉하고, 냉랭하며, 솔직한 마음들이
나중의 나를 위한 자양분이 되리라 생각한다.
게워내는 일은 얻어가는 것만큼 중요할 것이다.
추천곡: 쿨가이킷트, Missing Head, Jokeflower (Feat. UNE), 진짜를 보여달라니, Empty Spot (Feat. THAMA)
3. <MARZ 2 AMBITION> by 릴러말즈
"풍성함"
가을은 수확을 하는 풍부함의 계절이다.
앨범에 참여한 16팀의 피처링진과
7명의 프로듀서 라인업은
지난 시간 동안 릴러말즈가 이뤄낸 성과들의
열매들처럼 보인다.
전공자다운 서정적이고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
트랙마다 적합하게 변화하는
릴러말즈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피처링 아티스트들의 활약.
다채롭고 풍성한 가을 감성과 괴를 같이한다.
그가 한 허슬은 이 앨범에서 그 결과를 충분히 보여준다.
추천곡: TRUE (Feat. Beenzino), 야망 (Feat. ASH ISLAND, 김효은, Hash Swan, 창모), 1 (Feat. Dok2), JOHNCNOW (Feat. Owen Ovadoz, JUSTHIS, TAKEONE), WINNIN (Feat. Jvcki Wai)
4. <DETOX> by 빌 스택스
"외로움"
한바탕 수확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뒤에 남는 것은 공허함과 곧 다가올 겨울 같은 막연한 쓸쓸함일 것이다.
갈수록 짧아지는 가을은 순식간에 끝나는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그러한 즐거움과 쓸쓸함을 담은듯한 앨범이 바로 <DETOX>다.
카세트테이프처럼 앞뒤로 나눠
서로 상반된 두 대마초 품종의 효과를 연상시키는 트랙들.
지금 들어도 상당히 트렌디한 트랩 뱅어들의 연속인 전반부는
후반부의 강한 쓸쓸함을 더욱 부각해 준다.
파티 뒤 공허함을 느끼며 피는 대마초 같은 이 앨범의 매력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만나 배가 된다.
추천곡: WASABI (Feat. Boy Wonder), 허경영 (Feat. Tommy Strate), TNF (Feat. lobonabeat!, Furyfromguxxi & Boy Wonder), Wake N' Bake, Lonely Stoner (Feat 염따 & Rakon)
이렇게 몇 가지 키워드로 가을에 들으면
괜찮을 법한 앨범들을 가지고 와봤다.
가을 탄다는 말처럼 우리는 계절에 따라 생각과
무언가를 향한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변덕스럽단 뜻도 되지만,
오히려 변화를 꾀해볼 만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힙합을 한번 접하고 싶다면 추천곡들만 조금씩
들어보며 벌써 저물어 가는 가을을 누려보는 것이 어떨까.
다음에도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앨범과 곡들로
찾아오도록 하겠다.
-권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