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분노

by 서나림

왜 이리 화가 많을까. 나는.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화가 난다.

누가 버려뒀을까. 이 쓰레기는. 다 같이 생활하는 공동주택에서, 게다가 무엇보다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인데 어째서 함부로 이렇게 쓰레기를 버렸을까. 아마.. 실수일 거야. 모르고 떨어뜨렸을 거야. 누가 봐도 그래 보이지 않지만 엘리베이터가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내 쓰레기를 혼자 째려보다 마지못해 줍는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차를 몰아 주차장을 나선다. 아파트 입구에 경비아저씨들이 서서 지나는 차에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속도를 조금 늦춰서라도 꼭 창문을 열고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 라며 나도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왜 아저씨들은 출퇴근 시간에 덥고 추운 주차장 입구에서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내 상식이 잘못된 걸까. 인사란.. 서로 지나가며 마주쳤을 때 상호 주고받는 것 아닌가. 왜 고용된 사람이 굳이 일방적인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내 상식이 잘못된 걸까.


운전을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고 그저 교통법규를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나는. 규정속도를 지키고 차선 변경 전에는 멀리서부터 미리 깜빡이를 켜며 정지선을 준수한다. 개인적으로 클락션에도 표정이 있고 감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위험할 뻔하거나, 주의를 줘야 할 순간에는 짧고 경쾌하게 클락션을 울려준다. 그런데 운전을 하며 출퇴근하는 길에 몇 번이나 인류애를 상실하고 탄식을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깜빡이도 없이 무리하게 끼어들기, 어떻게든지 절대 누가 본인 차선에 진입하지 못하게 (누가 봐도 악의적인 티가나게) 방해하기, 꼬리물기, 신호위반, 칼치기,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신경질적으로 빠아아아아아앙 끊임없이 울려대는 클락션, 상대를 기어이 따라가서 창문 열고 째려보는 보복운전 등등. 내가 당하는 일일 때도 있고 다른 운전자들이 당하는 걸 목격할 때도 있다. 대체 왜 왜 그러는 거야.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고 스쳐 지나는 도로 위 차들 중 하나라고 해도 타인에게 어쩜 저렇게 무례할 수 있는지. 화가 차오르지만 참는다. 안 참으면 어쩔 거야.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 아침에 주운 쓰레기를 챙겨서 내린다. 회사 건물로 가는 길에 쓰레기통을 발견하고 쓰레기를 버리려다 멈칫한다. 일반쓰레기, 종이, 플라스틱,, 등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쓰레기통. 난리가 났다. 분류를 지키지 않는 건 예사요 온갖 음식물쓰레기까지. 한술 더 떠서 어떤 사람이 한눈에 봐도 꽤 커 보이는 쓰레기더미를 들고 와서 휙 던져 넣고 간다. 종량제 봉투가 아닌 일반 비닐봉투에 얼핏 봐도 가정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대충 마구잡이로 담아와서 버리는 듯한 모양새. 한마디 할까. 한마디 할까. 아니다 아침부터 웬 오지랖이냐.


업무 중에는 어떠한가. 통성명이나 인사도 없이 불쑥불쑥 화내는 사람들. 협조하지 않는 동료들. 자기 일을 나에게 미루는 팀원까지. 이것들 다 예의 없는 것들인데 나도 한번 똑같이 해줘? 나도 화내? 나도 협조하지 말아 봐? 일 미뤄봐?라고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지만.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 동안 깨달은 점이 있다면, 저 예의 없음이나 책임감 없음 또한 재능이다. 마음먹고 똑같이 해보려고 해도 절대 할 수 없다는 점. 내가 빼어나게 선량한 시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해보고자 해서 억지로 할 수 있는 재능은 없었던 것이다. 무지성으로 아무렇지 않게 피해를 주는 재능은 더더욱 없고. 밖에 나가 찬바람 한번 쐬고 냉수 한번 들이키고 꾸역꾸역 일을 한다. 그래 나는 지성인이다. 정규교육을 받은 성인이다. 잊지 말자.


어찌어찌 내 일과, 내 일이 아닌데 내 일이 되어버린 일들까지 처리를 해두고 퇴근 시간을 살짝 넘겨 사무실을 나선다. 오늘 하루도 힘들었으니 시원한 생맥주 한 잔 들이켜고 싶지만 다음날의 업무를 생각하면 맥주 한잔에도 너무 빨리 피곤이 찾아올 것 같아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타협을 보고 회사 근처 찜해뒀던 카페를 향해 걸어간다. 길거리에서도 곳곳에서 분노 지뢰들이 터져 나온다. 아무렇지 않게 침 가래 담배꽁초를 버리며 가는 사람들, 이 시공간에 나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마주 오는 사람이며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며 막 밀치고 걸어가는 사람들. 어지럽다. 원래 사람은, 타인은, 이토록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존재들이었나?


카페에 도착해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려고 하니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는 직원이 고개도 들지 않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서 있다. 아. 주문받는 거.. 맞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도 제스처도 없다. 당황해서 잠시 멈칫했더니 그제야 얼굴을 들어 이어폰 속 소리에 흠뻑 취한 표정으로 눈알을 데구루루 아래로 굴린다. 카드리더기가 있다. 아 네. 결제를 마치고 자리에 앉는데 영 기분이 찝찝하다. 내가 이상한가. 계속해서 의문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


커피가 나오고 가방에 챙겨 온 얇은 소설을 한 권 꺼내서 읽는다. 찰칵찰칵 요란한 카메라 소리가 들려온다. 요즘 사진 찍는 문화야 이미 문화이기 전에 일상이지. 그러려니 하는데 자꾸만 내가 앉은자리까지 비추는 카메라 소리가 영 신경 쓰인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다들 안 나오게 찍는 거 맞나. 나도 찍히는 거 아닌가 영 불편한데 그냥 뜨거운 커피와 함께 거슬리는 심기도 꿀꺽 삼켜버리고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선다.


그래 집으로 가자 집으로. 내가 너무 예민한가 봐. 요즘 세상 다 이러잖아. 안전한 집으로 가자. 회사 주차장에서 차를 몰아 다시 집으로 향한다. 아침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아슬아슬한 도로들을 지나 집으로 향한다. 신호위반 차선위반 역주행에 사이사이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 오토바이들은 자신들의 불법적인 운행을 마치 전시라도 하듯이 생기는 모든 갈등상황에 먼저 되레 화를 낸다. 본인이 신호위반 하고 튀어나와 놓고 왜 본인이 화를 낼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교통 법규가 바뀐 건가. 잠깐 이거 현실 맞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서 내 차의 조수석을 벽면에 최대한 맞춰서 가깝게 주차한다. 어차피 그쪽은 벽이고 이래야 나도 편하지만 내 옆 주차칸에 주차하는 사람도 편하니까. 신경 써서 주차를 하고 내려보니 옆차는. 내 운전석 쪽 차선을 반정도를 이미 밟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아. 내가 괜히 배려 안 했으면 내 칸에서 나도 못 내릴뻔했네. 마음이 씁쓸해진다.


더 아래층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잡아 탄다. 입주민 한 명이 먼저 타고 있어 안녕하세요. 가볍게 목례와 인사를 건넨다. 오. 쳐다도 보지 않고 미동도 없다. 혹시나 싶어 힐끗 보니 이어폰도 꽂고 있지 않다. 난 어릴 때 이웃 주민들 보면서 먼저 인사하는 거라고 배웠는데 그 사이에 사회 풍토가 바뀌었나. 모르는 입주민한테 인사하면 무례한걸까. 내릴 때 인사 할까 말까. 하필 내가 먼저 내리네. 고민이 무색하게 내릴 층이 되자 내 입에서 자동적으로 안녕히 가세요. 인사가 튀어나온다. 혹시나 못 들을까 아까보다 더 크고 또렷하게. 고요하다. 저 사람에게 난 그냥 모르는 사람에게 괜히 인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혹시 나 안보이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아파트 복도. 현관문 앞에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개운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 잠시 오늘 하루를 곱씹어 본다. 곱씹는 이 모든 것들이 단지 나에게 분노와 화만 일으켰나. 아닌 것 같다. 왜 이렇게 씁쓸하고 슬프고 안타깝고. 뭘까.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닌 건가. 한순간에 이렇게 된 건 아닐 텐데. 내 의식 과잉인가. 내가 예민한가. 뭐가 바뀐 건가. 이거 현실 맞지?


잠이나 자자 싶어 눈을 감으니 띠링띠링 휴대폰 알림이 울린다. 어둠 속에서 살짝 화면을 흘깃 보니 아파트 커뮤니티에 새 글이 올라왔다는 알림 창이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다. 평소엔 꺼두는 데 아마 어플 업데이트를 하면서 알림이 켜진 모양이다.


"글쎄 제가 오늘 퇴근길에 1단지 입구 게이트를 통과하는데 경비 아저씨가 인사를 너무 대충 하시는 거예요? 적어도 입주민들이 지나가면 90도는 숙여서 인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참. 이런 거 하나하나가 다 명품 아파트를 만드는 기본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공감을 누르는 소리와.. 동조하는 댓글들.. 나만 불편한가.. 댓글 창을 열어 무언가를 적으려다 그냥 어플 알림을 끄고 휴대폰을 뒤집어 버린다.


잠시 후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아예 어플을 삭제해 버린다. 아. 힘들다.

좋은 생각.. 좋은 생각.. 꿈에서라도 가고 싶다 예의 바른 세상..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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