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만 있으면 다 되나요?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을 둘러보다가 청년실업이나 정신 건강 혹은 어떤 이의 우울증, 공황장애 고백과 같은 주제의 글 들이 올라올 때면, 댓글창들은 어김없이 무자비한 전쟁터가 되고는 한다. 사람들의 수많은 손가락들이 익명성에 기대 키보드 위에서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스크린 너머 누군가의 고통을 향해 날카로운 돌을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던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이 던지는 돌은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다.
“나 때는 그런 거 다 참고했는데, 요즘 애들은 의지가 없어, 의지가.”
“죽을 만큼 노력은 해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다 힘든데 왜 그것도 못해. 정신병 있으니까 그렇지.”
이러한 날카로운 말들 속에서, 보편적인 사회 구조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깊은 아픔들은 ‘노력도 의지도 없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결론이 지어진다. 노력과 의지만 있다면, 한 사람의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이 평탄하게 닦여진 고속도로같이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쉽고 단순하지만 해결책이라고 제시할 수 있는 논리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이다. 이 논리로는 세상 속의 복잡한 것들을 이해하는 수고를 덜어 줌과 동시에, 본인은 이 세상에 적응해서 잘 살고 있어 낙오자 보다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도 느낄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점들은 개개인의 노력여하에 있으니 적응하지 못한 책임을 돌리기도 쉽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게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본인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의 마음을 진지하게 한 번이라도, 아니 1초 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책임하지만,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말은
“너만 힘든 거 아니고, 다들 힘든데 참고 살아가는 거야.”
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힘듦을 공감해 주며 다들 비슷하다는 연대감이 생기는 느낌이 들게 하지만,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네가 말하는 힘들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이야기할만한 유별날 것 없는 것이며, 남들과 다르지 않으니 이것을 굳이 이야기하는 것은 나약하기 짝이 없고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 한마디 속에서 나의 힘듦을 표현하는 것은 엄살이 되었고, 내가 흘렸던 눈물들은 나약해서 그렇다는 증거가 되어버렸다. 이 말은 위로로 포장하고 있지만 너의 아픔의 이야기를 내가 들어줄 의무가 없다고 돌려 말하는 거절의 표현이었다.
마치, 아픔을 두고 대결이라도 하는 듯이, 어떤 사람이 ‘힘들다’라고 소리치면, ‘나는 더 힘들다.’라고 더 크게 소리쳐서 힘들다는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폄하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고 있는 본인들의 힘듦을 증명받고 싶어 했다.
그러한 말도 안 되는 대결 속에서, 정작 위로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자연스레 묻혀갔으며 힘들다는 표현을 할 자격조차 박탈당했다. ‘너만 힘드냐’라는 말은 결국 ‘그러니까 너는 아파하면 안 된다.’라는 말과 같았다. 상처는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픔을 느끼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니까. 어쩌면 이것은 비단 몇몇 사람들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통계가 말을 하고 있는데도, 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노력을, 의지를, 끈기를 탓하며 이 끔찍한 현실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실패한 개인을 탓하는 것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시스템의 책임을 외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대한 사회적 차원의 자기기만이다. 이유 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본인이 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어쩌면, 이다지도 각박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각자 살아내야 할 저마다의 ‘이유’를,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너무나 외롭게,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의지를 발휘하게 할 ‘이유’를 찾을 기회조차 박탈하는 차가운 세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