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진실

봉투효과 - 11화(최종)

by JUNI KANG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댔다.

악몽 같은 지난날의 기억들은 4년이나 지났음에도 수시로 나를 괴롭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사건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나를 지탱해 주는 삶의 목적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아들 세형이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즘 들어 세희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의 침울한 목소리였다.

제보가 들어왔던 곳을 모두 뒤졌지만 비슷한 아이조차 없었다는, 맥 빠지는 이야기였다.

한 군데만 더 들러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집을 팔기로 한 터라, 계약서는 명의자인 남편이 직접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나를 바라보는 세희의 눈빛이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래서 정신과 담당 의사와 통화한 뒤, 오늘은 병원에 다녀오기로 한 날이었다.

모처럼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다.

아이 얼굴을 씻기고, 햇살이 가득한 거실에 앉아 머리를 빗어 고무줄로 묶어 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세희가 나지막하고 느릿하게 나를 불렀다.

"엄… 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실로 4년 만에 듣는 딸아이의 목소리였다.
"응… 그래… 엄마… 여기… 있어."

울컥 목이 메어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급한 마음에 아이의 어깨를 잡고 나를 향해 돌려 앉혔다.


"엄마… 그 아저씨… 나… 때문에 죽…은… 거… 맞…지?"


아이의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콩 튀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나는 세희의 손을 잡고 마주 앉았다.


"말해 봐. 그날 있었던 일을……."


아이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끌어안아 가슴에 묻었다.


"전깃줄에…… 내 머리가… 엉켰어. 아저씨한테… 말했더니…… 잠시만 기다려. 내가 잘라 줄게. 그랬어. 배낭에 있던 칼… 그 칼로……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했는데……."

세희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아,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 아이가 그 일을 죄책감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그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가엾은 아가.


나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설움에 복받쳐, 얼마 동안을 함께 소리 내어 울었는지 모른다.


아이를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그 남자의 진실을 밝혀 주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문득 세형이의 실종을 취재했던 방송국의 여기자가 떠올랐다.

서랍을 뒤져 간신히 명함을 찾아들고, 전화 버튼을 또박또박 눌렀다.

"네. KGS 김미선 기자입니다."
"네. 4년 전, 하일시 여자아이 납치 사건……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싶어서요."

한동안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기자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한 달 전에도 그 사건에 관한 제보 전화가 한 통 왔었어요. 옥상 문에서 대치 중이던 특공대원이었다면서요. 그때 납치범 사살 후, 머리카락이 전선에 엉켜 꼼짝 못 하고 있던 아이의 머리를 특공대원이 잘라 주었는데, 그 일을 비밀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했어요.

최루탄이나 섬광탄 정도였어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굳이 사살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고요. 그 제보를 받고 저도 방송국 자료실을 확인하던 중, 당시 용의자를 인터뷰했던 동영상 파일이 사라진 것도 발견했고요."




내 무릎을 베고 잠든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햇살이 숨을 죽이기 시작했는지, 거실에는 어느새 그림자가 야금야금 스며들고 있었다.


불현듯 남편이 보고 싶어졌다. 지난 4년 동안, 얼굴을 마주 보고 식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고개만 숙이고 있던 남편이 가증스럽고 원망스러워, 수고했다는 말조차 건네고 싶지 않았다.


그 역시 나보다 더한 악몽의 시간을 살고 있을 텐데…….


오늘만큼은,

마치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놀다 저녁때가 되어 밥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들처럼,

세형이의 손을 잡은 남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불쑥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아이를 눕혀 놓고 오래된 핸드백을 뒤져, 남편에게 받았던 그 봉투를 꺼내 들었다.

안에 들어 있던 쪽지를 펼쳐 보고는, 몇 번이나 힘을 주어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방바닥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황금빛 저녁 햇살은 커튼에 부딪혀 거실에 흩어지고, 창밖 어딘가에서 까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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