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효과 - 10화
경찰은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칼을 칼집에 넣어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사이렌 소리, 경광등 불빛, 무전기 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헬기 소리들이 귀에 익숙해질 즈음, 제법 덩치가 큰 유압 크레인이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크레인의 붐 끝에는 건물 유리창을 닦을 때 사용하는 사각형 곤돌라가 매달려 있었고, 그것은 5층 높이까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곤돌라 안에는 방송용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커다란 알루미늄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박스 위에는 조명용 라이트가 장착돼 있어, 깨진 유리창 너머를 무대처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알루미늄 박스 안에는 저격용 총을 소지한 저격수가 납작 엎드린 채 대기하고 있었다. 박스에는 총구가 나올 만한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지만, 계단 쪽에서는 조명 때문에 총구가 보이지 않았다.
납치범이 있는 계단과 곤돌라는 십여 미터 남짓 떨어진 거리에서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33호 준비됐나. 범인이 칼을 소지하고 있다. 아이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사살하라. 이상."
"카피. 33호 준비 완료. 이상."
저격수의 무전은 가느다란 마이크와 이어폰을 타고, 땀에 젖은 목젖을 지나 특공대 전원의 귓속으로 동시에 전달되었다. 무거운 긴장감이 공간을 눌렀다.
계단 아래에서 헤드셋을 쓴 젊은 남자가 머뭇거리다 기다란 마이크를 뽑아 위로 올려 주었다.
남자는 세희와 함께 층계참에 섰다. 창밖의 햇빛은 점점 시들어 가며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고, 곤돌라에서 비치는 조명은 남자와 세희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곤돌라의 카메라맨이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말아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남자는 목청을 두어 번 가다듬더니, 낮고 떨리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왜 내 말은 믿지 않고 무조건 범인으로만 몰아 사건을 서둘러 종결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아이와 부모님께는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별도로 처벌을 받겠습니다.
그 사람이 빌려준 돈을 갚겠다고… 집으로 오라고 해서… 돈을 받으러 간 것뿐입니다.
거실에서 그 사람이 준 음료수를 마신 뒤 소파에 쓰러져 몇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내 손에 피 묻은 칼이 쥐어져 있었고… 낌새가 이상해 안방 문을 열어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칼에 찔려 숨져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진실을 밝히고 싶어서…."
저격수는 조준 렌즈를 통해 납치범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세희가 머리 위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비명을 질렀다.
납치범은 말을 멈추고 아이를 내려다보며 몇 마디를 건네는 듯하더니, 이내 주머니에서 과도를 꺼내 칼집을 벗기고 세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퍽—
남자의 머리에서 물풍선이 터지듯 소리가 났다. 그는 마네킹이 쓰러지듯 쿵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머리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고, 계단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세희는 눈을 꼭 감은 채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쓰듯 울고 있었다.
특공대가 아이에게 달려왔을 때도, 세희는 주저앉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살아서 내 품으로 돌아왔고, 납치범은 현장에서 사살된 것으로 사건은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