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미안해...

봉투효과 - 09화

by JUNI KANG



유리 조각과 쓰레기들이 널려 있는 계단을 질질 끌려 올라가던 세희는, 어린 마음에도 울음을 멈추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스스로 계단을 올랐다. 남자는 자꾸 세희의 다친 다리를 보았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듯했지만 달리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피가 나는지 자주 쳐다보았다.

5층 계단 위에는 옥상으로 나가는 문이 보였다. 세희는 그 앞에서 계단에 주저앉았다.

"아저씨, 목말라요. 물 좀 주세요."


남자는 배낭을 내려놓고 물통을 꺼냈다.

그 배낭은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가면서 차 안에서 먹으려고 음료수와 과일, 빵과 과자 등을 준비해 두었던 간식 가방이었다.


둘은 층계참의 첫 번째 계단에 나란히 앉아 물을 나눠 마셨다.

남자가 모자를 벗어 세희에게 부채질을 해 주었다.

세희가 남자를 쳐다보았다.


짙은 선글라스 때문에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어 계단 아래 쓰레기 더미 위로 던져 버렸다.


남자는 더 이상 도망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곳곳에 쓰레기가 쌓인 계단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이 깨져 나간 상태였다.


그들이 앉아 있는 층계참 뒤쪽은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었고, 천장 부근에 있는 배전함에서는 수많은 전깃줄이 쏟아져 나와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남자는 세희의 피가 말라붙은 무릎을 보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많이 아프지? 미안하다."

세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또
"미안하다. 미안해…"라고 말했다.

몇 살이냐고 물었고, 열 살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세희는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다가 텁수룩한 수염 속에 반듯한 얼굴과 맑은 눈빛 때문인지 나쁜 아저씨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남자는 배낭을 뒤져 초콜릿을 꺼내 들었다.

세희에게도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초콜릿 포장을 벗기려 애썼다.

왼손에 채워진 수갑이 철커덕거리며 흔들렸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희가 자기가 들고 있던 초콜릿을 벗겨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남자는 고개를 떨군 채 나직하게 속삭였다.
"고마워. 조금만 참아. 이제 곧 집에 가게 될 거야."


세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그때였다. 요란한 헬기 소리가 건물을 날려 버릴 듯 가까이 날아왔다.

먼지가 가득 일었다.


계단에도 먼지바람과 함께 온갖 쓰레기들이 날아다녔다.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두 사람의 온몸에 뽀얗게 먼지가 덮였다.


헬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남자가 모자로 세희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세희도 모자를 받아 남자의 머리와 어깨를 털어 주었다.

남자가 고맙다고 말했다. 세희가 빙긋 웃자 남자도 따라 웃었다.


멀지않은 곳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뒤, 빈 공장 주차장으로 스무 대가 넘는 차량이 들이닥쳤다.

경찰차와 구급차, 경찰 특공대가 탄 검은색 승합차, 그리고 방송국 기자들의 차량까지 뒤엉켜 몰려들었다.


훈련된 특공대원들은 차량 뒤에서 한쪽 무릎을 꿇거나 건물 벽에 몸을 붙인 채, 신호와 함께 재빠르게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남자는 그런 모습을 창가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4층 계단까지 올라온 경찰은 남자를 발견하고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느 틈에 왔는지 옥상 문 쪽에도 몇 명의 특공대원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찰이 말했다.
"이기철 씨, 포위됐습니다. 아이 다치게 하지 말고 순순히 투항하세요."

남자는 배낭에서 과도를 꺼내 칼집을 벗겨 손에 쥐고 경찰을 향해 외쳤다.

"먼저 생방송용 카메라와 기자를 보내 주세요. 오 분만 인터뷰를 하고… 생방송으로 내보내 주면… 바로 자수하겠습니다."




이전 09화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