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봉투효과 - 08화

by JUNI KANG



아까부터 ‘칙칙’거리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시끄럽게 토해 내던 경찰의 무전기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한 말이 흘러나왔다.
"아이가 도착합니다. 차량 들어가게 기자들 좀 막아 주세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현기증이 밀려왔다.

맨발로 병실 바닥에 내려섰다. 휘청거리며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오른쪽 손등이 뜨끔하며 링거 주사 줄이 튕겨 올랐다. 남편이 허겁지겁 링거액을 들고 따라왔다.


내가 있는 곳은 사 층쯤 되어 보였다. 어둑한 창밖은 온통 경광등 불빛으로 가득했다.

창문 손잡이를 잡아 올려 유리창을 밀어 열자, 후끈한 여름의 열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왱왱거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구급차를 향해 기자들과 경찰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구급차가 멈췄다.

나는 병실 문을 향해 뛰었다. 남편도 뒤따라 뛰었다.

링거 줄이 뽑혀 나가며 손등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정신없이 계단을 돌아 현관으로 내려왔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누군가 아이를 안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세희의 녹색 야광 티셔츠가 보였다.

뜨거운 눈물이 뺨 위로 쏟아져 내렸다. 땀과 눈물에 얼룩진 세희가 절룩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세희의 큰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나는 축 늘어진 세희를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친정엄마는 병실의 텔레비전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며 목 놓아 울었고, 아이가 납치된 뒤 지금 이 순간까지 생방송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전국의 수많은 엄마들 또한 함께 흐느껴 울었다.




"지옥이야… 지옥이야."

남편이 신음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안정제를 맞고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 얼굴을 묻은 남편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가 돌아온 뒤부터 남편은 계속 바들바들 손을 떨었다.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실 때도 손이 심하게 떨려 물이 주룩주룩 쏟아지곤 했다.


나는 그런 남편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세희의 손만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세형이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묻자, 남편은 손바닥으로 눈물만 훔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무슨 연락 온 거 없냐고요?"

내가 다시 채근하자, 그제야 그는 어렵사리 한마디를 뱉어냈다.
"아직…"

남편이 떨리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쳤다.


수사를 맡았던 담당 경찰관이 병실로 들어와 서류 한 장을 내밀며, 잘 읽어 본 뒤 확인란에 서명해 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사건 경위서로, 기록된 내용에 사실과 다른 점이 없는지 확인해 달라는 설명이었다.

경찰은 그동안의 상황을 보고서에 적힌 대로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남편이 납치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뒤, 경찰과 방송국 기자들이 주차장으로 몰려들던 날.

나는 그곳에서 맨발로 넋이 나간 채 망연히 서 있었다.

그러다 힘없이 쓰러지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이 장면은 순식간에 인터넷으로 퍼졌고, '납치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에 공분한 엄마들의 동류의식은 신속한 수사를 요구하는 수천 건의 댓글을 경찰청 홈페이지에 쏟아냈고, 급기야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수사관들이 CCTV를 확인하던 중, 경찰쪽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조속한 검거'를 약속했다.

기자회견을 연 지 한 시간쯤 지나, 남편의 차량이 중일고속도로를 통해 오경 IC를 빠져나갔다는 보고가 접수되었다.


도로공사 하이패스 서비스팀이 차량에 장착된 단말기의 고속도로 진출입 기록을 확인해 준 덕분이었다.

곧 오경 읍내에 대규모 경찰력이 투입되어 길목을 차단하고 수색 작전에 돌입했다.


헬기가 투입된 지 삼십여 분 만에, 중부산업로 인근에 위치한 폐업 중인 오 층짜리 공장 건물 주차장에서 남편의 차량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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