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에 머무는 사람들의 숨은 공통점

-실패가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온 삶-

by 글래드웰

그는 오랫동안 성장과 인정에 집착해 왔다. 단순히 잘되고 싶다는 욕망이라기보다,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불안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 집착이 그를 더 과감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의욕적인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제 선택은 늘 안전한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집착은 과잉 욕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충분히 써보지 못한 잠재력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현장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몸으로 배웠다면 사람은 이렇게까지 인정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미 “해봤고, 여기까지구나”라는 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체감을 갖지 못한 채, 오랫동안 머릿속에서만 가능성을 키워 왔다. 충분히 부딪혀보지 못했고, 결정적인 실패와 통과의 경험도 없었으며, 자신의 한계선이 어디인지 명확히 확인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늘 자신을 “아직 증명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했다. 이때의 인정 욕구는 허영이 아니라, “아직 내 능력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는 미완성의 감각이었다.


문제는 이 감각이 실제 부딪힘의 자리로 밀어 넣기보다, 오히려 준비와 단련의 상태에 오래 머물게 했다는 점이다. 이 미완성의 감각은 곧 열등감으로 이어졌다. 그는 비교했고, 부족함을 느꼈으며,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 열등감은 그를 멈추게 하기보다는 계속 움직이게 했다. 좌절보다는 집착으로, 포기보다는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남았다. 겉으로 보기에 이것은 생산적인 태도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 하나가 가려져 있었다. 그는 실패를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계속 실패하고 있었다. 다만 그 실패는 도전의 결과로 드러나는 실패가 아니라, 준비와 단련의 과정 속에 흡수되어 버리는 실패였다. 계획은 수정되었고, 방향은 바뀌었으며, 시도는 중단되었지만, 그 실패는 분명한 사건으로 남지 않았다. 그는 실패를 피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실패해 온 셈이었다. 이 방식에서는 실패가 탈락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직 때가 아니다”,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로 정리된다. 실패는 있었지만, 축적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패는 경험이 아니라 소모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보상적 태도가 작동했다. 즉, 부딪힘의 경험으로 이어지지 못한 열등감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더 단단해 보이게 만드는 태도로 나타났다. 때로는 무모함이 당당함으로 오해되었고, 성급함은 추진력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에너지는 많이 쓰였지만, 축적된 경험이나 명확한 성과는 남지 않았다. 전문성은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고, 스스로 충분히 부딪혀보지 못했다는 감각은 오히려 더 커져갔다.


그는 종종 이 지점에서 자신을 비난했다. “왜 그렇게 겁이 많았을까.” 그러나 문제는 용기의 부족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두려움과 걱정이 많은 기질을, 그는 줄곧 준비와 단련으로만 처리해 왔다. 새로운 상황을 기회보다 위험으로 먼저 계산했고, 실패를 경험이 아니라 손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다.


그의 사례처럼 평범함에 머무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그들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성실하고, 성장과 인정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 집착은 실패를 드러내는 방향이 아니라, 실패를 흡수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성실함은 쌓였지만, 경험은 얕았고, 성과는 구조로 남지 않았다. 이런 삶은 개인의 성격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가 축적되지 않는 구조 안에서 비슷한 선택을 반복한다. 실패는 분석되지 않고 정리되며, 정리는 다시 준비로 이어질 뿐,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왜 안 되는가”라는 질문은 반복되지만, “이 실패는 어디에 쌓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 역시 오랫동안 이 구조 안에 있었다. 그는 실패를 견디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지만, 실패가 쌓이는 자리를 만들지는 못했다. 삶은 조심스럽게 유지되었지만, 결정적인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그는 개인의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실패를 드러내고 축적하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글쓰기를 선택한다. 이 선택은 위로나 자기합리화가 아니다. 글쓰기는 실패해도 인생이 무너지지 않으면서, 실패를 명확한 기록으로 남기는 방식의 시도다. 현장에서 충분히 몸으로 배우지 못한 대신, 그는 오래 생각했고, 분석했고, 구조를 고민해 왔다. 이것은 몸의 경험은 아니었지만, 사고의 경험은 분명히 축적되어 있다. 글쓰기는 이 축적을 늦게나마 실패의 형태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실패한 생각도, 틀린 판단도 기록한다.

이렇게 남겨진 실패는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된다. 글은 그를 단번에 바꾸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실패가 더 이상 증발하지 않게 만든다. 성장은 언제 시작하느냐보다, 실패가 어디에 쌓이기 시작했는가에서 갈린다. 그는 이제 실패를 피하지 않고, 남기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평범함에 머무는 사람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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