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작동 방식의 문제다.―
기업은 성과가 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사람을 떠올린다. 더 똑똑한 인재, 검증된 경력, 성공 사례를 가진 리더를 찾는다. 인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인재가 중요하다는 명제와, 인재만으로 성과가 만들어진다는 믿음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많은 기업은 이 둘을 혼동한 채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외부 인재 영입이 대표적이다. 업계에서 명성이 높았던 전문가, 글로벌 기업에서 성과를 냈던 임원을 데려오지만, 조직은 오히려 혼란을 겪는다. 전략은 빠르게 바뀌고, 내부 반발은 커지며, 기대했던 성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결론은 늘 비슷하다. “이 사람도 별수 없었다.” 그러나 이 결론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다. 실패의 원인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그 역량이 작동하던 조건이 사라졌다는 점에 있다.
사람만 옮겨오고, 시스템은 옮기지 못했을 때
— J.C. 페니 사례 —
.C. Penney는 이 문제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회사가 Ron Johnson을 CEO로 영입했을 당시, 조직은 이미 장기간의 침체 국면에 들어가 있었다. 핵심 고객층은 고령화되었고, 쿠폰과 대규모 할인에 의존한 비즈니스 모델은 마진을 갉아먹고 있었다. 온라인 유통 확산으로 백화점 포맷 자체의 경쟁력도 빠르게 약화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J.C. 페니는 기존 방식으로는 반등이 어려운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론 존슨의 영입은 단순한 인사 교체가 아니었다. 그는 Apple에서 애플 스토어라는 새로운 리테일 모델을 설계한 인물이었다. J.C. 페니 이사회가 기대한 것은 단기적인 실적 개선이 아니라, 할인 중심의 낡은 구조를 벗어나 브랜드와 고객 경험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일이었다. 이 선택은 실패를 예견한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이미 한계에 도달한 구조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과감한 전환 카드였다.
애플 스토어의 성공은 한 명의 리더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다. 가격 정책, 매장 운영 방식, 직원 권한, 의사결정 속도, 고객 경험이 오랜 시간에 걸쳐 유기적으로 맞물린 시스템의 산물이었다. 론 존슨은 이 시스템을 J.C. 페니에 이식하려 했다. 그러나 옮겨온 것은 시스템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에 해당하는 정책과 설계 철학에 가까웠다.
대표적인 시도가 가격 정책이었다. 그는 기존의 쿠폰·세일 중심 전략을 폐지하고, ‘항상 낮은 가격(EDLP)’을 도입했다. 이는 유통업 전반에서 이미 검증된 방식이었고, 할인 과잉으로 무너진 가격 신뢰를 회복하려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문제는 이 정책이 작동하던 전제 조건이 J.C. 페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J.C. 페니의 핵심 고객은 오랫동안 쿠폰과 대규모 세일을 통해 “지금 안 사면 손해”라는 감각을 기준으로 구매 결정을 내려온 집단이었다. 가격은 더 합리적으로 바뀌었지만, 고객이 매장을 찾던 심리적 이유는 사라졌다. 그 결과 2012년 J.C. 페니의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5% 감소했고, 동일 매장 매출은 30% 이상 하락했다. 이는 전략의 옳고 그름 이전에, 기존 고객 행동을 지탱하던 구조가 한 번에 제거되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매장 운영 방식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브랜드별 쇼룸 형태의 리모델링은 대규모 비용과 긴 전환 시간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J.C. 페니는 재무적 여유가 부족했고, 현장에는 변화에 대응할 자율성과 학습 경험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 의사결정은 본사에 집중되어 있었고, 현장의 피드백은 실행 단계에서 지연되었다. 전략은 급진적이었지만 실행은 느렸고, 그 사이 고객은 떠났다. 론 존슨 개인의 역량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역량이 작동할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가 먼저 실행된 것이었다.
개인 성과가 뛰어나도, 시스템이 다르면 결과는 달라진다
— 2014년 넥센과 삼성 —
이 원리는 기업뿐 아니라 스포츠 조직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스포츠는 구조가 단순해 시스템의 효과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2014년 한국 프로야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해 넥센 히어로즈는 개인 기록에서 매우 강력한 팀이었다. 투수진(밴헤켄, 손승락, 한현희)에 확실한 에이스, 불펜, 마무리를 갖추고, 타자 부문(박병호, 서건창, 강정호)에서 리그 상위권 성적을 기록한 선수가 여럿 있었고, 공격 지표는 리그 최고 수준이었다. 타율, 최다안타, 득점, 홈런, 타점, 장타율 등 주요 기록 1위는 모두 넥센 선수였다. 특정 선수의 장타력과 득점 생산력은 눈에 띄었다. 개인의 능력만 놓고 보면 넥센은 충분히 우승 후보였다.
반면 삼성 라이온즈는 화려한 개인 기록보다, 전 포지션에서의 안정성과 역할 분담이 두드러진 팀이었다. 타선은 고르게 출루했고, 투수진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운용되었다. 특정 선수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았고, 누가 빠져도 전체 구조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결과는 명확했다. 개인 성과가 더 눈에 띄었던 넥센이 아니라, 전체 기능이 고르게 작동하던 삼성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선수의 재능 차이보다, 선수들이 배치되고 활용되는 방식의 차이가 만든 결과였다. 개인의 최고점이 아니라, 시스템의 평균 작동 능력이 승부를 갈랐다.
능력은 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
- J.C. 페니와 2014년 넥센–삼성이 보여준 같은 실패의 구조 -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실패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문제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서로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쪽은 ‘이게 잘되고 있다’고 믿었던 지표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고, 다른 한쪽은 성과로 이어지는 신호를 중심에 두고 운영했다.
J.C. 페니에서 고객을 움직이던 힘은 가격의 절대값이 아니었다. 고객은 쿠폰을 사용하고, 세일 기간에 구매하며, “이번에 싸게 샀다”는 체감을 통해 행동했다. 이 과정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고객이 매장을 찾게 만드는 작동 방식이었다. 론 존슨의 EDLP 정책은 가격 체계를 정돈했고, 논리적으로는 개선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고객의 행동을 촉발하던 신호를 제거했다. 가격은 좋아졌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더 이상 ‘지금 사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조직은 가격의 합리화를 성과로 보았지만, 고객은 구매를 결정하는 기준을 잃었다. 이 어긋남이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2014년 넥센과 삼성의 대비도 같은 구조다. 넥센은 홈런, 타점, 장타력 등 눈에 띄는 개인 기록에서 강점을 보였다. 한 경기, 한 장면만 놓고 보면 분명히 강한 팀이었다. 그러나 리그 우승은 순간의 폭발력보다, 시즌 전체를 통과하는 안정성에서 결정된다. 삼성은 개인 최고 기록보다, 매 경기 일정한 득점과 실점을 유지하는 운영을 중시했다. 이는 ‘누가 가장 잘하느냐’보다 ‘팀이 얼마나 꾸준히 작동하느냐’를 성과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넥센이 뒤처진 것은 능력 때문이 아니라,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이 리그의 요구와 어긋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응 방식이었다. J.C. 페니의 변화는 가격만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재고, 홍보, 직원 응대, 매장 구조까지 전사적으로 함께 바뀌어야 했다. 문제는 이 모든 조정이 본사 결정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부분적으로 수정하거나 시험해볼 여지는 거의 없었고, 선택지는 ‘계속 밀어붙이기’ 아니면 ‘전면 철회’뿐이었다. 그 사이 고객은 기다려주지 않고 떠났다. 반면 삼성은 시즌 중 발생하는 변수—부상, 컨디션 저하, 불펜 소모—에 대비해 현장에서 즉시 조정할 수 있는 운영 선택지를 이미 갖고 있었다. 한 선수의 부진이 곧바로 팀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여러 대안 경로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지막 차이는 충격을 견디는 구조였다. J.C. 페니의 쿠폰과 세일은 문제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출을 떠받치던 버팀목이었다. 이를 한 번에 없애자, 그 공백을 메울 장치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변화는 개선이 아니라 급격한 추락으로 나타났다. 삼성은 특정 선수에게 기대지 않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한 명이 흔들려도 팀 전체가 무너지지 않았다. 넥센은 개인의 강점이 분명했지만, 그 강점이 흔들릴 때 충격을 흡수할 장치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인재의 총합이 아니라, 작동 방식의 문제 J.C. 페니와 넥센의 사례는 서로 다른 영역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왜 뛰어난 사람과 높은 개인 성과가 있어도 결과는 나오지 않는가. 답은 단순하다. 성과는 개인의 능력에서 직접 나오지 않는다.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지의 기준,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조정할 수 있는 경로, 실패가 한 번에 번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구조가 함께 갖춰질 때에만 개인의 능력은 실제 결과로 이어진다.
이 조건이 빠진 상태에서 사람만 바꾸면, 실패는 반복된다. 많은 기업이 이 지점에서 같은 오류를 범한다. 성과가 나지 않으면 더 좋은 인재를 찾고, 더 강한 리더를 영입한다. 그러나 시스템은 그대로 둔다. 그러면 인재는 빠르게 학습한다. 더 잘하는 방법은 더 과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행동을 줄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조직은 인재를 보유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질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만약 인재와 자원이 부족한 조직이라면 성공은 불가능한가. 강점이 없는 기업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가. 바로 이 질문이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약점은 언제 전략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