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가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구조의 문제-
정책이 실패했을 때 가장 흔히 등장하는 말은 “취지는 좋았다”는 평가다. 실제로 많은 정책은 공공의 이익, 약자 보호, 사회적 형평이라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정책의 성패가 의도의 선함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책은 설계자의 마음이 아니라, 현장에서 반복되는 선택과 반응 속에서 작동하거나 멈춘다. 그리고 그 작동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정책이 실패를 어떻게 다루는지, 그리고 누가 수정할 수 있는지를 제도 안에 포함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이 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출발점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제시한 애쓰모글루의 제도 분석이다. 그는 국가의 성패를 도덕이나 지도자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의 구조로 설명한다. 그는 제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의 구분이다. 이 구분은 선한 국가와 나쁜 국가를 가르기 위한 도덕적 잣대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지, 실패가 생기면 어디에서 처리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기준에 가깝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시도할 수 있으며 그 결과가 다시 제도에 반영되는 구조와 결정은 위에서 하고, 실패의 책임은 현장과 개인이 떠안는 구조 간의 차이다.
이때 흔히 오해하는 점이 있다. 실패한 국가는 애초에 악의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실패한 국가의 제도 역시 처음부터 악의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의도가 아니라, 제도가 스스로를 고칠 수 있었는가에 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포용적 제도의 핵심은 ‘완벽함’이 아니라 재시도가 가능한 구조다. 포용적 제도는 사람들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영국은 17세기 이후 의회 권한이 강화되면서 상업 활동과 기술 실험이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새로운 사업이 실패해도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뒤집어씌우지 않았고, 실패 자체가 곧 퇴출이나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환경에서 사람들은 조심스럽지만 지속적으로 새로운 선택을 반복할 수 있었고, 그 축적이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문제가 드러나면 법과 제도를 고치고, 권한을 다시 조정하는 과정이 가능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반대로 착취적 제도는 실패의 비용을 개인과 현장에 떠넘기고, 수정의 권한은 위로 끌어올린다. 소련의 중앙집권적 산업화 체제가 대표적이다. 혁명 직후의 소련은 극심한 혼란과 빈곤에 놓여 있었고, 분산된 의사결정과 느린 조정은 국가 붕괴의 위험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지도부는 질서 회복과 빠른 성장을 위해 권한을 중앙에 집중시키고, 생산 목표와 방식은 위에서 결정하는 체계를 선택했다. 이 방식은 단기간에 산업 생산량을 끌어올리고, 군사력과 중공업을 빠르게 키우는 성과를 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무모한 선택이 아니라,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합리적 대응처럼 보였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났다. 중앙에 권한이 집중된 구조에서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실패가 위로 전달되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원인은 구조가 아니라 개인의 무능이나 태만으로 처리되었고, 잘못된 정책은 수정되지 않고 은폐되었다. 생산 방식이 비효율적이어도 이를 바꿀 권한은 현장에 없었고, 실패의 비용은 노동자와 지역 사회가 감당했다. 반면 결정권과 보상은 중앙에 남아 있었다. 이 체제는 초기에는 질서와 성과를 만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잘못이 반복돼도 고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애쓰모글루가 말하는 실패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착취적 제도는 처음부터 악의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선의와 실용성에서 출발한 선택이 수정 불가능한 구조로 굳어질 때 형성된다. 제도가 스스로를 고칠 수 없게 되는 순간, 출발점의 선의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 형태는 오늘날의 정책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정책 역시 하나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반복적으로 지적된 청년·취약계층 대상 일자리 지원 정책을 떠올려보자. 취지는 분명하다. 구직 기간의 부담을 줄이고, 사회 진입을 돕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타난 모습은 다르다.
지원 요건은 복잡하고, 신청 절차는 길며, 한 번 탈락하면 다시 도전하기 어렵다. 구직자는 이 정책에 참여하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선택을 미룬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시간은 그대로 개인의 손실이 된다. 반대로 정책을 운영하는 쪽에서는 참여율이 낮거나 성과가 미미해도, 설계 자체를 바꾸기보다 홍보 부족이나 대상자의 의지 문제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정책은 실패를 학습하지 않는다. 실패는 개인의 문제로 처리되고, 정책은 그대로 유지된다. 현장에서 “이 조건에서는 참여하기 어렵다”는 신호가 반복해서 올라와도, 이를 즉시 반영할 수 있는 권한과 속도가 없다. 그 결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실제 행동을 바꾸는 힘은 점점 약해진다. 이 구조는 애쓰모글루가 말한 착취적 제도와 정확히 닮아 있다. 실패의 비용은 아래로 내려가고, 수정의 권한은 위에 남는다.
반대로 작동하는 정책은 다른 특징을 보인다. 참여가 낮으면 조건을 낮추고, 절차를 줄이며, 현장의 판단 범위를 넓힌다. 일정 부분의 악용 가능성도 감수한다. 왜냐하면 모든 오작동을 막으려다 보면, 아예 아무도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실패를 숨기지 않고, 실패를 통해 설계를 고친다. 선의보다 중요한 것은 고칠 수 있음이다.
이 지점에서 정책을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해진다. 정책이 선의로 설계되었는가는 중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정책은 사람들이 실제로 선택을 바꾸게 만드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틀렸을 때, 정책은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가. 이 모든 문제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정책이 선의로 설계되었는가가 아니라, 현장에서 스스로 수정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성공하는 제도는 처음부터 완벽해서가 아니라, 잘못을 빨리 감지하고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는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역설이 하나 드러난다. 좋은 의도로 만든 정책일수록 “틀릴 수 없다”는 믿음이 강해지고, 그만큼 고치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성과를 내는 정책은 처음부터 완벽하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제도가 악용될 수도 있으며, 예상과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설계된다. 그래서 실패가 나타나면, 사람을 탓하기보다 제도를 먼저 고친다.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 정책은 현장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가. 실패가 발생했을 때, 그 실패를 흡수하고 수정할 수 있는가. 선의는 출발점일 뿐이다. 선의만으로 정책은 작동하지 않는다. 정책이 작동하려면, 현장의 욕망과 두려움, 계산을 전제로 한 구조가 필요하다. 참여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하고, 실패를 전제하며, 수정 가능한 여지를 남겨두는 제도만이 현실에서 살아남는다.
이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
왜 많은 정책이 참여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가.
그 이유 역시 정책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가 현장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