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시스템이 만든다”는 말이 선뜻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스스로 정의해 온 성공의 기준 때문이었다. 나는 성공을 거창한 성공담이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신화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성공은 다르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사회현상을 보이지 않는 원리로 이해하고, 그것이 작동하는 구조를 읽어내는 사람의 태도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나무만 보며 살아왔다. 주어진 임무와 의무를 수행하며, 하루의 과제에 매달려 살아왔다. 숲의 원리와 생태계의 전반을 이해하고, 그 나무와 어떠한 연결점을 갖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아왔던 건 분명하다. 물론 바쁜 세상에 주어진 임무와 의무를 실천하고 일상에 얽매여 사는 우리 현대인들의 삶은 고단하고 정신없다. 나무만 보고 살기에도 벅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질문이 반복되었다. 일종의 문제의식 같은 건데 그걸 어떻게든 글로 표현하여 고민해보고 싶은 충동은 여전히 강력하다. 왜 나는 늘 의지와 신념은 충분했는데,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자기 주도적 성취를 경험하지 못했을까. 왜 결심은 반복되었지만, 결과는 축적되지 않았을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단어를 체감하게 해준 것은 최근 6개월 동안의 달리기였다.
나는 그동안 수없이 달리기를 시도했다. 시작은 늘 같았다. 선선한 가을 공기가 가져다 주는 달리기의 유혹, 이번에는 다르다는 오기, 실패에 대한 만회 심리.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갈등이 시작된다.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달리기 전의 고민과 저항에 쓰이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았다. 겨우 뛰기 시작해도 무릎 따끈거림, 거친 호흡, 곳곳에 나타나는 통증, 날씨, 주변 상황이 또 다른 장애가 되었다. 길어야 한 달이었다. 나는 늘 ‘의지’로 밀어붙였고, 의지가 약해지면 끝났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추석 연휴가 분기점이 되었다. 친정과 본가를 오가는 일정 속에서도 운동화를 신었다. 이틀은 못 뛰었지만, 연휴 마지막 날은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완벽한 연속이 아니라, 끊어졌을 때 다시 이어가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의지와 신념은 그 자체로는 약하다. 그것이 놓여 있는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달리기를 지속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날씨였다. 바람, 추위, 체온 변화는 생각보다 큰 변수였다. 그래서 과감히 헬스장을 선택했다. 비용 부담이 있었지만, 날씨라는 변수를 제거했다. 이것은 장소 변경이 아니라 시스템 변경이었다. 헬스장에 오면 간단히 하체 운동을 하고 곧바로 러닝머신에 오른다. 고민의 시간을 줄이고, 행동 동선을 단순화했다.
또 하나의 전략은 두 가지 루틴을 같은 시간에 묶는 것이었다. 달리기 초반에는 영어 회화를 듣고, 중반 이후 힘들어질 때는 가장 재미있는 콘텐츠를 선택해 고통을 상쇄했다. 의지에만 의존하지 않고, 보상 구조를 설계한 셈이다. 이제 6개월이 지난 지금도 가기 싫은 마음은 여전하다. 그러나 더 강하게 작동하는 감정이 생겼다. “안 갔을 때의 찝찝함.” 그 감정이 나를 현관으로 이끈다. 운동화 끈을 묶는 순간, 절반은 끝난다. 시스템이 나를 움직인다.
나는 오랫동안 성공을 의지의 문제로 이해했다. 더 참고, 더 결심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은 다르다. 성공은 의지의 강도가 아니라, 의지가 소모되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에서 나온다. 환경을 바꾸고, 경로를 단순화하고, 실패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장치를 만들 때 행동은 축적된다.
결국 성공은 특별한 재능이나 극적인 결단의 산물이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읽고, 불리한 변수를 조정하며, 반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설계의 결과다. 나는 이제 나무를 넘어서 숲을 보려 한다. 숲이란 행동을 떠받치는 구조와 환경이다. 성공은 의지로 밀어붙이는 싸움이 아니라,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달리기를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