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의 변명거리

by 홍시

지글지글 불판 위에 구워지면서 흰 김을 내는 삼겹살에는 투명하고 맑은 소주. 감자나 닭을 노릇노릇 맛좋게 튀겼다면 탄산이 아리고 시원한 생맥주가 좋고, 신선한 회를 여러 점 들게 될 때는 산뜻한 사케를 곁들인다. 비 오는 날에는 잘 부친 전에 막걸리가 필수일 테고,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비스트로에서 쉐프가 정성 다해 요리한 식탁에는 포도주를 올리며, 무거운 클래식이나 올드 재즈에는 약간의 견과류나 건과일과 함께 온더락 위스키를 마신다. 술과 음식, 술과 분위기를 아울러 즐기는 것이 내게는 어떤 식도락을 넘어선 의식과도 같다. 취하는 기분보다도 입 안에 감도는 쓰고 단 맛이 즐겁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술에는 약하다. 금세 취해서 건너편 사람이 걱정할 정도로 뺨이 붉어진다. 많이 마시는 성격도, 술에 강한 체질도 아닌지라 위스키라면 한 잔, 생맥주라면 두 잔, 소주라면 반 병 정도에 잔을 내려놓는 편이다. 크게 취하지 않는 선에서 그만두니 취객이라기에도 아쉽고,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니 애주가라기에도 어렵지만 세상에는 한두 잔 즐기고 취하는 사람을 부르는 특별한 단어가 없으니 나도 취객이고 애주가라고 불렸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취하고 싶을 때가 있다. 대체로 시간은 저녁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 잠들기 전. 불면을 겪고 있지만 잠을 자고 싶어서 술 생각이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고 싶지 않을 때 술 생각이 난다. 애써 조금 더 괴로워지고 싶을 때다. 밤은 긴데, 밤의 끝을 좀 더 붙들어두고 싶을 때. 밤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어째서 다 아프고 괴로운지, 그 안에 몸을 뉘이고 있으면 살갗을 찌르는 따가운 통증이 도리어 나를 편하게 한다. 오래 전에는 팔목에 칼날을 누른 적도 잦았다. 옅은 흔적으로 왼팔을 빼곡히 채운 과거의 순간들. 나는 그것을 잠을 청하지 않는 밤들에 다시 불러낸다. 그리고 그런 밤에 혼자 술에 취해 지나간 통증들을 다시 앓는 것이다.


오래 전, 당시 만나던 사람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싸우고 헤어진 뒤, 무턱대고 혼자 바에 찾아가 메뉴판도 보지 않고 주문했다. 제가 오늘 너무 힘든 일이 있어서 그런데요, 독한 칵테일 한 잔 주시겠어요? 그때 바에 있었던 나이 든 바텐더 사장님이 내 말을 듣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손님, 저도 젊을 적 독주를 많이 마셔보았답니다. 그런데 겪어보니까 어려운 날에 독주를 마셔버릇 하면, 힘든 때마다 취하려고 하는 몹쓸 버릇이 생겨요. 즐겁고 행복한 날에 들뜨고 신나고 취해야 하는 거거든요. 힘든 오늘은 입에 달고 맛있는 걸 먹고 기분을 푸시고, 독한 칵테일은 다음에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다시 오세요. 진실된 속이 느껴지는 말에 설득되어 그날은 바텐더가 가장 잘 만든다던, 산뜻한 멜론과 파인애플의 준 벅을 한 잔 마시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원래 계획대로 독한 칵테일을 마셨더라면 그런 기분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마음이 괴로운 날에는 일부러 독주를 찾지 않는다.


그렇다한들 여전히 취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이 괴롭지도 않은 날에. 지내기 불행하지도 않은 날에. 그냥 평범한 어떤 밤에 갑자기. 밤이 너무 조용해서. 하루가 너무 평화로워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모든 것이 괜찮기만 해서. 일종의 자학이라고 이해한다. 말했듯, 애써 조금 더 괴로워지고 싶을 때다. 나를 괴롭히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롭고,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이 실제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


혼자 집에서 안주도 없이 하이볼이나 포도주를 마신다. 평소 같았으면 치즈 플레이트를 차리거나 간단한 견과류나 건과일이라도 곁들였을 것을, 이런 날이면 아무것도 없이 빈 잔에 술만 따른다. 그리고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까지 마신다. 한 잔 혹은 두 잔이면 충분하다고 느끼지만, 거기서 한 잔 정도를 더 마신다. 술은 술을 부른다고, 한 잔쯤 더 마시고 싶어지면 그 욕구를 거절하지 않는다. 포도주 반 병 이상을 비운다. 나를 망가뜨리고 싶은 나 자신의 욕구에 마음껏 져 준다. 스스로를 챙기고, 아끼고, 사랑하고 싶은 날도 있지만 반대로 스스로를 망치고, 괴롭히고, 해치고 싶은 날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직접 망가뜨리고,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해소감은 자신을 보듬어주면서 느끼는 안정감과는 다른 결의 만족감이다.


어느 정도 취하고 나면 조금 더 스스로를 해치고 싶거나, 어딘가로 훌쩍 도망치거나 사라져버리고 싶거나, 나를 더 위험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불쑥 머리를 들 때가 있다. 그쯤 되면 술잔을 놓는다.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면 끝도 없이 망가진다는 것을, 이미 수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세상의 끝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으로 움직였을 때 내가 어디까지 위험해졌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성실한 취객이 되어 마지막 잔을 기울인다. 술잔에 통증을 담아서, 술잔에 자기 학대를 부어서.


그 잔을 모두 비우고 깜빡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숙취로 위액까지 게워낼지도 모른다. 두통에 시달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자학의 열매다. 하루만에 추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윙윙 울리는 머리를 붙들고서도 여느 취객처럼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쯤 되는 작은 파괴는 차라리 나 자신에게는 가끔 권장할 만하다. 나를 끝까지 해칠 수 있는 방법이 세상에는 차고 넘치는데, 몇 번의 구토와 한나절의 두통 정도라면 안전하게 돌아오는 축인 셈이니까.


나는 포도주 한 방울이 바닥에 말라붙은 유리잔을 설거지한다. 반쯤 남은 포도주병에 뚜껑을 덮어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이렇게 마시는 날은 자주 오지 않으니, 산화되지 않도록 뚜껑을 단단히 덮어야 한다. 또 어느 날이 될지 모를 미래의 밤을 조금 기대하는 것쯤은 병(病)이 아니겠지. 찬장 문이 닫히면서 어설픈 취객도 함께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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