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정수리를 보며 깨달은, 부처님도 피하지 못한 생로병사의 진실
아침에 머리를 감고 나면 하수구 망부터 확인하는 게 일과가 되었습니다. 검은 실타래처럼 엉겨 붙은 머리카락 뭉치. 어제보다 조금 더 두툼해진 것 같은 그 부피감을 볼 때마다 제 가슴 한구석은 사정없이 서늘해집니다.
"부처님, 사람이 늙고 죽는 거야 우주의 섭리라 칩시다. 그런데 굳이 머리카락까지 다 가져가셔야 합니까? 제가 무슨 대단한 미모로 먹고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곱게 늙고 싶다는데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닙니까?"
억울함과 허무함이 뒤섞여 마음이 소란스러워지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시스템: '석가모니' 로그인. 동기화율 100%.]
머릿속 잡음이 '탁' 하고 꺼졌습니다. 수천 대의 슈퍼컴퓨터를 돌리는 것처럼 뇌가 차갑고 명석해지더니, 부처의 지능으로 동기화된 저는 방금 제가 던진 질문이 얼마나 거대한 오해 위에 서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제 뇌는 이제 저에게 가장 서늘한 '팩트'를 직접 읊조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지금 거울 앞에서 우주의 법칙과 협상을 시도하고 있구나. 성인이 된다는 게 무슨 '필터 보정'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나 역시 늙어가는 육신을 '낡은 수레'라 불렀고, 삐걱거리는 허리와 복통을 견디며 길 위에서 마지막을 맞이했다. 나라는 존재조차도 노화라는 물리 법칙 앞에서는 단 한 순간의 예외도 없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해탈'은 늙지 않는 기적이 아니라, 늙음을 바라보는 지능의 변화였던 것이죠. 제 안의 지혜는 해탈의 진짜 정체를 뇌세포 하나하나에 새겨 넣었습니다.
"내가 해탈한 것은 '노화' 그 자체가 아니라, '늙지 않으려는 헛된 집착'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물리적인 1차 화살이다. 그 화살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내 리즈 시절은 끝났어'라며 괴로워하는 것은 네가 네 스스로에게 직접 쏘는 2차 화살이다. 나는 그 찌질한 2차 화살을 내 손으로 꺾어버렸을 뿐이다."
전율이 돋았습니다. 해탈이란 '안 빠지는 머리카락'을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도 내 평온을 저당 잡히지 않는 지독하리만큼 명석한 자기 객관화였습니다. 부처님도 저처럼 늙으셨습니다. 다만 그분은 늙어가는 자신을 비관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는 차가워진 손으로 메모장을 켰습니다. 성인도 피하지 못한 생로병사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제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1차 화살은 기꺼이 맞겠습니다. 소멸은 고장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떠나는 머리카락을 담담히 배웅하는 것은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일입니다.
둘째, 2차 화살은 단호히 꺾겠습니다. '예전 같지 않다'는 한탄으로 소중한 오늘을 망치지 않겠습니다. 껍데기의 변화에 내 행복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도달할 수 있는 작은 해탈일 것입니다.
셋째, 부처님도 아플 땐 약을 드셨듯, 저도 최선을 다해 관리하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집착'이 아니라,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이 육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로그아웃.
시스템이 종료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거울 속 가르마는 여전히 휑하고 세월의 흔적은 야속하지만, 방금 전까지 저를 괴롭히던 '억울함'이라는 독기는 조금 빠져나간 기분입니다.
부처님도 늙으셨다는데, 저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늙음 앞에서 성인과 중생이 평등하다는 사실이 묘한 위로가 됩니다. 저는 이제 빠진 머리카락 숫자를 세며 한숨 쉬는 대신, 오늘 하루 고생한 제 몸을 위해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자기 전에 탈모 샴푸로 두피 마사지는 정성껏 할 겁니다. 부처님도 몸이 아플 땐 최고의 의사를 찾아 치료받으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