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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Oct 20. 2016

술에 취해 돌아가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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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 술기운에 내딛는 걸음, 걸음엔 애써 감춰두었던 하루의 애환이 담겨 있다.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 짙게 깔린 사람 틈에서는 나의 넋두리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출항을 앞둔 배처럼 끓어오르던 감정이 무뎌진다. 헤아려 본다. 한 잔에 모질게 굴던 상사의 행동을, 한 잔에 숨 막히게 조여오던 업무의 양을, 한 잔에 조직에서의 불안한 입지를.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하루라도 섣불리 보낼 수 없어서, 개인의 안위보단 조직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입장에선 술 따위에 의식을 놓을 수 없다. 하루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며 그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일과는 거미의 안식처처럼 샐 틈 없이 짜여 있다. 퇴근 후, 길을 걷고 있는 지금도 나의 내일이 보인다. 뻔하다. 절절매고, 눈치나 보며, 사무실에서의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겠지.


흐트러지고 싶다. 길가에 널브러진 잔해들처럼, 자유롭게. 나답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기준이 있다면, 그와 반대로 행동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혼자 상상했었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달려가 울고, 조르고, 때를 써 본다면. 알고 있다. 누구나 술에 취해 인사붙성인 사람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그러했는 걸. 취기에 잠긴 목소리가 들릴 때면 정신 차리라는 말이나 건네 와 놓고, 그들과 같이 행동한다면 두고두고 부끄러울 것만 같다. 별 수 있는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텅 빈 세상에 대고 독백하는 수밖에.


간판의 불빛이 하나 둘 사라지고, 차가운 공기가 목덜미를 스친다. 머물고 싶은 밤. 떠나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찰나의 감상에서 벗어나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느슨해질 법도 한 데, 땅바닥에 고개를 묻고 오직 나아만 가는 걸까. 절망이라는 전염병이러도 창궐 했나보다. 곳곳을 둘러보아도, 정승처럼 근엄한 표정뿐이다. 실없는 웃음을 띄워볼까 하다 이내 멈춘다. 행복해 보일까 봐. 나의 감정과는 다르게 해설될까 봐 겁이 났다.


주량껏 마실 걸 그랬다. 다가오는 내일이 어떠하든, 적어도 오늘은 편히 잠들 수 있었을 텐데.  


주저리, 주저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돌아가야지. 나를 기다리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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