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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Nov 09. 2023

"항상 웃고 쾌활하며 명랑합니다"

"선생님, 혹시 무빙 보셨어요?"

"아, 네. 보다가 잠시 쉬고 있어요."

"아~ 그러시구나."

"네. 선생님은 다 보셨어요?"


최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를 꼽는다면 단연 '무빙'일 것이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무빙은 한때 내가 속한 많은 관계에서 대화의 주된 소재였다. 자연스레 무빙을 보았냐고 묻는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고, 그럴 때면 보다가 잠시 쉬고 있다고 나는 대답했다. 드라마를 쉬고 있다는 말은 보기를 멈췄다는 나의 애매한 표현 방식이다. 무빙뿐만이 아니다. 많은 드라마에서 보다가 마는 행동을 반복해 왔다. 완결까지 드라마가 손에 꼽는 편이라고나 할까. 완결까지 보는 특이한 행동은 만화책에서부터 일찍이 시작됐다.


만화책이나 드라마를 완결까지 못 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상되는 흐름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흥미를 잃는 편이다. 완결까지 나와있는 경우에는 인터넷을 찾아보며 결말을 확인하거나, 완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검색하곤 한다.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고조되거나, 고조가 예상되는 시점에서도 다음 편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편이다. 강한 자극에 대한 회피 반응으로 예상되는데, 인물들 간에 갈등이 심화되는 장면을 보는 걸 꺼려한다. 삶 자체가 긴장의 연속이라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완결에 이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실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였다. 어떤 만화책을 완결까지 보았었는데,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허전함을 느꼈다. 좋아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허무했다. 피부로 전해지는 여운에 어쩔 줄 몰라하며 잠에 들기 전까지 완결 편을 들춰 본 기억이 생생하다. 드라마로는 '시그널'이 있다. 시그널이란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다. 드라마를 보았던 시기가 삶에서 괴로웠던 때이기도 했지만, 드라마 속 이야기에 매료되어 한 편, 한 편을 아쉬워하며 보았다. 상실감에 대한 걱정보다 흥미가 앞섰고, 기어코 완결에 다다르게 되었다. 상실감은 이내 찾아왔고, 드라마의 잔상이 희미해질 때까지 허전함이란 후유증을 안고 살아갔다. 


나는 일찍이 이별을 어려워했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순간이 예상만 되어도 피하기 위해 애를 썼다.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주위에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이별에 겁을 냈던 이유에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이별은 영원한 헤어짐이자 누군가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별을 가져오는 대상으로 나는 나를 지목하는 편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곁에서 사라지면 내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더 그럴싸한, 인정받을만한 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유치원 때는 의욕적인 편이었던 것 같다. 항상 웃고, 쾌활하며, 명랑하다니. 익히 알고 있는 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서 수업 시간에 긴장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집에서 연습은 안 하면서도(피아노가 없었지만) 선생님에게 칭찬은 받고 싶어서 잔뜩 굳은 어깨로 건반을 두드렸었는데.


7살로 넘어가며 자신감이 부족해진 듯하다. 많이 격려해 주고, 늘 칭찬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라는 문장이 인상 깊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원하는 만큼 어울리지 못하고, 마음을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며 쭈뼛거리던 순간들이 드문드문 떠오른다. 한 살 전까지만 해도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주인공이 아니면 역할극을 하지 않으려 하며, 군인이 되겠다던 당찬 아이였는데. 


돌이켜보면, 유치원 때의 나는 인정에 목말라 있었다. 칭찬이 필요했다. 잘하고 있다는, 충분하다는, 수고했다는 말이 순진무구했던 마음에 부단히 채워졌어야 했다. 공부도, 발표도, 피아노도, 친구를 사귀는 일도 뛰어나게 해내지 못했으니, 해내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을 알아줄 누군가가 절실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나는 전략을 바꾸었다.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인정받는 방법으로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는지, 이를테면 무엇을 좋아한다거나 필요로 하는지 듣고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멀리서 지우개를 빌리러 다니던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필통에서 지우개를 일찌감치 꺼내어 우연을 가장하며 빌려주었던 일은 인정을 위한 나의 전략을 면밀히 보여준다. 


이 당시의 나는 무엇보다 인사성이 밝은 아이로 주목받았다. 집을 오가며 만나는 어른들께 정수리를 보이며 "안녕하세요!" 어김없이 인사했다. 어른들은 수호처럼 예의가 바른 아이는 드물다며 칭찬했다. 이러한 모습은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복도를 오가며 만나는 선생님들께 크게 인사했고, 대부분 미소로 환영해 주었다. 교실에서 수호가 인사성이 좋다며 나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일도 잦았고, 나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내심 기뻐했다. 


그렇지만 나의 인사에는, 웃는 얼굴에는 인정에 대한 욕구가 짙게 깔려 있었다. 내 곁을 떠나가려 하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와 나를 알아주었다면. 뭐라도 잘한다고 말해주었다면.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면.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안아주었다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히 맞아주었다면 나는 쾌활하고, 명랑하고, 노래와 율동을 즐기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Image by thedanw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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