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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03. 2024

괜찮아,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테니까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깔끔하게 잘라주세요.."

"원하는 스타일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원하는 스타일은 딱히 없고, 그냥 깔끔하게 잘라주세요."


그동안 미용실을 이용하며 나누었던 주된 대화이다. 연예인 사진을 핸드폰에 저장하고 미용실에 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가운을 두르고 앉으면 원하는 스타일을 말하기가 곤란해졌다. 내가 어떻게 잘라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미용사 입장에서는 나았겠지만, 진실의 거울 앞에서 미용사와 눈을 맞추고 있으면 움츠러드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원하는 스타일이 대체로 없었다. 그러므로 잘 어울리는 형태로 알아서 잘라주기를 바랐다. 군대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동네에 있는 미용실을 주로 이용했다. 역 주변의 번듯한 미용실은 촌스러운 애가 외모에 신경 쓴다는 인상을 줄까 봐 꺼려졌다. 외모에 관심이 많아졌던 스무 살 때는 동네 미용실 여기저기를 특히 전전긍긍했다.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사랑방처럼 이용하는 미용실로 찾아가 깔끔하게 잘라달라고 하였으니, 미용사는 최선을 다했겠지만 또래들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로 잘리고는 했다. 


한 번 자른 곳에 두 번 이상 찾아가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 한 번이 만족스럽지 못한 까닭도 있었지만, 미용사가 알아보는 게 어딘지 모르게 민망했다. "또 왔네요?" 미용사가 반가운 듯 웃으며 말을 거는 장면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게 했다. 더군다나 지난번에 자른 스타일에 만족하여 방문했다고 오해하면 곤란했다. 그럭저럭 괜찮게 머리카락이 잘렸다면 다음 방문 때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면 되었겠지만, 미용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깔끔하게 잘라주세요" 밖에 없었다.


내 머리카락은 반곱슬에 숱이 많은 편이다. 얼굴은 길다. 얼굴형에 어울리게 자르는 게 어려운 형편(?)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방문한 미용실에서 미용사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나에게 들어맞는 스타일로 잘리는 환상을 품고 살았으니 나아질 구석은 적었다. 서른에 가깝도록 미용실 여행은 그칠 기미가 없었다. 첫 직장이 현장근무를 하는 곳이었으므로 이용하는 미용실의 범위는 동네에서 서울로 바뀌었다. 재방문하는 곳은 여전히 드물었고, 다시 가더라도 세 번을 넘기지 않았다. 미용실은 고로 불만족스러움을 경험하는 곳이 되었다. 세련된 모습을 기대하지만, 어색해 보이는 머리카락에 또다시 실망하게 되는. 


유진은 이런 나의 고충을 잘 아는 친구이다. 그와 만날 때마다 이번 달에는 머리카락이 이상하게 잘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망감과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유진이 한결같이 들려주던 말이 있다. 


"괜찮아,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테니까" 


잘 어울리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타인이 하는 어울린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을 수 없다. 그렇다고 안 어울린다고,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다. 스스로도 안 어울린다고 말하고, 상대방이 보기에도 안 어울려서 그대로 말했겠지만,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서 토로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유진의 문장은 실망감에 물들어 곱씹어 보기보다는 안 어울린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어색하지 않게 자라나서 다시 자르게 될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하였다. 


Image by Jorge Ortega from Pixabay


어제는 쌍둥이 조카인 우준이와 서준이가 참여한 축구대회의 본선 경기가 있었다. 그저께 예선에서 2승 1무를 기록하여 조 1등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조카들이 속한 팀을 약체로 누나는 알고 있었는데, 이변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겨울이 물러가기 아쉬운 듯 매서운 바람을 연신 불어댔지만, 승리를 향한 조카들의 열기는 식히지 못했다. 나는 초콜릿을 사들고 예선전을 치르는 조카들을 응원하며 한 골씩 더해지던 그들의 즐거움에 깊이 환호했다.


그런데, 본선에서는 내리 패배를 하며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고 한다. 하루 만에 이변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조카들이 속한 팀이 위태롭다는 걸 예선전 3경기를 모두 관람한 나는 알고 있었다. 축구는 팀으로 하는 운동이다. 뛰어난 선수 한두 명이 팀에 있다면 이길 확률이 물론 올라가겠지만, 승리로 반드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축구에서는 개인보다 팀의 능력이 더욱 중요하며, 토대가 되는 것은 선수 간의 대화이다. 


경기를 치르는 우준이와 서준이의 팀은 대화가 유독 적었다. 흐르는 공을 쳐다보며 반응하는 데에 급급해 보였다. 한 명의 번뜩이는 움직임으로 골을 계속 넣기는 했지만, 그가 막히면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서로가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상대편의 움직임을 일러주며 경기에 임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물론 초등학생의 대회였으므로 대화를 기대하기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대화 없이는 운 적인 요소에 승리를 맡겨야 하는 점은 확실해 보였다. 


바라는 헤어스타일이 아무리 없었다고 해도, 만족하기 위해서는 나의 선호를 말해야 했다. 난이도가 높은 구성인 반곱슬에 숱이 많은 나의 머리카락은 처음 다루는 미용사가 잘 자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므로 처음 가는 미용실이라면 나의 머리카락 상태를 충분히 설명해야 했고, 두 번째 가는 미용실이라면 지난번에 자른 스타일에서 무엇이 개선되기를 원한다거나, 그때와는 어떻게 다른 스타일로 머리카락이 잘리기는 원하는지 말해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점차 다가갈 수 있었다.


요즘에는 한 미용실에 정착했다. 이용한 지 반년이 넘었다. 미용사와 이따금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이번에는 앞머리가 눈썹을 가리게 잘라주세요"라든지 "위쪽에 숱좀 더 쳐주세요"처럼 완성된 스타일은 아닐지라도 나에게 더 어울릴 만한 형태로 잘라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더 어울릴 만한 스타일로 미용사가 제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내가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듬어진 헤어스타일에 늘 만족하는 건 아니다. 실망도 제법 따른다. 하지만 실망의 정도가 기대를 함구하던 과거와 비교할 정도는 못 된다. 집에서 연신 거울을 들여다보며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이내 끄덕이며 다독인다. 


'그래,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테니까. 그때는 앞머리를 더 길게 남겨달라고 얘기해 보자'


한 달에 한 번 정도 조카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주로 패스나 슛을 하는 연습을 해왔는데, 앞으로는 서로에게 말을 전달하는 연습을 함께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일은 퇴근하고 조카들과 오랜만에 놀기로 했다. 축구대회에서 떨어진 얘기를 만나서 주구장창 들려줄 텐데, 딸기케이크를 사들고 가서 나누어 먹으며 얘기해 주어야겠다. 


"괜찮아, 우준이와 서준이가 축구를 좋아하는 한 승리의 기회는 다시 찾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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