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던 서른, 아파트를 계약했다.
쏴~~~
퍼붓듯 쏟아지던 비에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던 그날.
나는 강남역 사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엄마 친구 아들의 결혼식, 분명 그 근처였다.
성격 급한 내가 빗소리에 쫓기듯 들어간 곳.
그곳은 웨딩홀이 아닌 모델하우스였다.
그날, 내 인생의 궤도가 틀어졌다.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직원이 다가와 웃었다.
"마지막 물량인데 운이 좋으시네요."
나. 중. 에.
이곳은 꼭 투자하라던 할아버지의 유언 같은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미분양, 필로티, 브랜드...
아무것도 모르던 30대 초반의 내 눈에 보인 건 단 하나였다.
"내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있다."
엄마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엄마, 이번에 못 하면 평생 내 집은 없을 것 같아."
할아버지의 말씀을 신봉하던 엄마는 쉽게 도장을 허락했다.
하지만, 세상은 냉정했고 지인들은 나를 비웃었다.
"그 계륵 같은 아파트를 왜 사?
브랜드도 없고 세대수도 적은데."
"당장 취소해! 너 그거 돈 다 날리는 거야."
새벽까지 울려대던 취소 종용 전화들.
불안함에 잠을 설쳤지만, 나는 내 선택이 '기회'라고 믿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은
그 계약금으로 강남 소형아파트를 갭으로 살 수 있던 시기였다고 한다.
내가 계약한 입주시점에는 5천만원 더 떨어졌었고,
강남의 다른 아파트들은 훨씬 더 올랐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내지를 수 있는 용기는
태어날 땐 금수저, 자랄 땐 흙수저인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서울 한복판인데, 땅값은 오르겠지.
역세권인데 망하기야 하겠어?
그렇게 나는 필로티 2층,
남들이 난방비 때문에 기피한다는 그 집의 주인이 되기로 했다.
계약서에 찍힌 선명한 도장.
내 인생 첫 승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산산조각 났다.
입주를 기다리며 수없이 찾아갔던 그 현장에,
어느 날부터인가 기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공사가 멈췄다.
그날부터
이 집은 ‘쉼터’가 아니라
공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