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주한 아버지의 시간

<시간과 인연의 자리>시리즈 11 (1)

by 이민자의 부엌

지난해 이맘때, 나는 한 번 시아버지의 시간을 멈춰 세워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멈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멈춘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내가 비로소 시아버지의 시간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국은 내가 사십 년을 살아낸 뿌리이자, 이제는 친정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자리다. 이십 년 넘게 캐나다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그 목소리는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책임감으로, 또 어떤 날에는 아주 조용한 죄책감으로 마음을 흔든다. 그리고 그 부름의 중심에는 치매를 앓고 계신 시아버지가 계신다.


우리 부부는 오 년 전부터 하나의 약속을 지키듯 살아왔다. 일 년에 한 번은 반드시 한국에 가자는 다짐이었다. 그 시작은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자주 끊기고, 문장은 방향을 잃은 채 흩어졌다. 말과 말 사이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검사를 권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병원에 가기를 거부하셨다. 그 완강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평생을 버텨온 사람의 습관과, 스스로를 뒤로 미루는 데 익숙해진 삶, 그리고 늘 “괜찮다”는 말로 자신을 설득하며 살아온 시간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삼 년 전, 우리는 한국으로 와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양팔을 붙잡고서야 겨우 가능했던 그 길 위에서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날의 얼굴은 지금도 또렷하다.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한데 섞여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병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더 이상 스스로를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의 표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검사 결과는 담담했지만 냉정했다. 이미 중기 치매였다. 그 이후로 달라진 것은 아버지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시댁에 도착해 큰절을 올릴 때마다 나는 늘 눈물이 먼저 난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알아보신다. 그러나 그 인식은 예전과 같지 않다. 어딘가 멀고 흐릿하다. 마치 오래된 사진 속 인물을 떠올리듯, 기억과 현재 사이에 얇은 막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온기가 남아 있다. 나는 그 온기를 붙잡듯, 이번에도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가능한 한 오래 아버지 곁에 머물겠다고.


아버지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된 사진처럼 분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비 오는 날, 젖은 구두를 신고 출근 준비를 하시던 모습과 바짓단의 흙을 털어내며 아무 말 없이 문을 나서시던 뒷모습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 묵묵함이 가족을 지켜온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지금도 아버지는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 그 말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온 방식이 남긴 마지막 언어처럼 들린다.


예전에는 한국에 오면 집안 정리부터 시작하곤 했다. 어지러워진 공간을 정리하는 일은 나에게 흐트러진 시간을 다시 가지런히 놓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요양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집 안의 시간은 이미 어느 정도 정돈되어 있었고, 나는 대신 아버지의 옷을 정리했다.


오래된 옷을 꺼낼 때마다 아버지는 “멀쩡한데 왜 버리느냐”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저며왔다. 아버지에게 지금은 여전히 아무 문제 없는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는 낡음도 병도 아직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머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조금씩 늘려갔다. 백화점에 들러 운동화를 신겨드리고, 계절에 맞는 옷과 속옷을 함께 골랐다. 아버지는 어떤 물건 앞에서는 낯선 표정을 지으시다가도, 어느 순간 익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신선한 생선회를 사드리고 막걸리를 함께 마셨다. 잔을 드는 손은 예전보다 느려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오래전의 어느 날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지만,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바닷가에도 함께 다녀왔다.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한참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 눈빛은 또렷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아버지가 기억이 아닌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은 아버지가 오랫동안 근무하셨던 구청 앞을 함께 걸었다. 그 자리에 서 계신 모습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몸이 기억하는 시간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듯했다. 우리는 집 근처 야산을 함께 걷고, 벤치에 앉아 쉬고, 다시 천천히 걸었다.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는 순간들이었다.


남편이 비즈니스 포럼 참석차 집을 비운 며칠 동안 집에는 아버지와 나 둘만 남았다.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TV 앞에서 보내셨다. 몇 해 전 마련해드린 큰 화면의 TV를 보며 아이처럼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렇게 큰 게 다 있냐.”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하셨지만, 나는 한 번도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물음이 아버지 안에 남아 있는 어떤 빛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나는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대답했다. 그 반복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나는 그 느림 속에 머무르는 법을 배워갔다.


남편과 시동생은 점점 지쳐갔지만, 나는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지금 아버지의 모습이 어쩌면 20년 후 우리의 미래일지도 몰라.”
그 말 이후 이어진 침묵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떠나는 날, 우리는 아버지를 깨우지 않기 위해 새벽에 조용히 집을 나설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깨어 계셨다. 더 주무시라고 말씀드렸지만 고개를 저으셨고, 결국 우리를 따라 주차장까지 걸어 나오셨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울에 사는 장남 부부로 남아 있다. 캐나다라는 먼 거리는 아직 아버지의 시간 속에 들어오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꼭 안았다. 몸은 예전보다 많이 가벼워졌지만, 그 온기는 여전히 따뜻했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지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신 채, 그저 익숙한 사람을 배웅하듯 가만히 서 계셨다. 그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아버지의 시간을 바라보며 나는 깨닫는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마음의 온기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은 늙어가지만 사랑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돌봄은 의무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또 하나의 인연이라는 사실을.


언젠가 나 역시 같은 길 위에 서게 될 것이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같은 확인을 되풀이하며 누군가의 안심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나를 돌보는 사람이 지금의 나처럼 조용하고 부드럽게,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대답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이 시간은 미래를 위한 연습이 아니라, 아버지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단 한 번뿐인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서두르지 않는다. 아버지의 시간은 이미 충분히 빠르게 흘러왔고, 이제는 조금 느려져도 괜찮기 때문이다. 나는 그 느린 시간 곁에 앉아 함께 숨을 고르고, 함께 하루를 건너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배운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 끝까지 곁에 머문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사랑인지를.


이번 한국 방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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