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

네 번째 글: 남자는 울지 않는다.1

by tank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을 미덕으로 아는 남자가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할 줄 아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밥도!”

“아는?”

“자자!”

이 세 마디가 다인 남자는 늘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라는 신조에 걸맞게 살아왔다고 한다.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쉽게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는데 오죽하면 그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사람들 중에서도 그가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이가 있을 정도였으니 그의 우직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이 간다.


그런 그가 그리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병으로 아내를 잃었다.

이제 막 신혼에 접어든 딸과 아직 대학 졸업 전인 아들을 두고 평생 고생만 하다 떠나간 아내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남자는 그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일관했고 장례절차에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빈소를 지킬 뿐이었다.


간간이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에도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고 다만 한 번씩 담배를 태우는 모습에서나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묻어날 뿐이어서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적잖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궁금한 마음에 상주되는 그의 아들에게 무슨 사연이라도 있어 그런가 물었더니

“아버지 성격이 원래 저러세요.” 한다.


입관하는 날

모든 준비를 끝내고 가족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하고 염을 끝낸 다음 관 뚜껑을 덮어 결관을 하기까지 다른 가족들이 울며불며 이별을 슬퍼하는 동안에도 미동도 없이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던 그가 가족들이 모두 빈소로 돌아갈 때까지 남아있다가 가족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내 손을 잡더니

“잠시만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하기에 짐작하는 바가 있던 나는 가만히 그의 손에 내 손을 포개는 것으로 동의를 표하고 그 자리를 피해 영안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아 주었다.


짐작대로 그는 소리를 죽여 꺽꺽대며 자기 아내의 관을 잡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차마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표현하지 못했던 슬픔의 응어리가 혼자 남게 되자 비로소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오 분이 지나고 십 분이 가까워지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는 그를 달래기 위해 안치실로 들어간 나는 관 앞에 무릎을 꿇은 그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감정을 어떻게 억누르고 있었을까?’ 싶을 만큼 그렇게 한참을 꺽꺽대던 그가 겨우 진정을 하고 눈물 자국을 닦아내며 한 말은 그랬다.


“나도 사람이라 기쁘면 기쁜 줄 알고 슬프면 슬픈 줄 압니다.

그러나 워낙 어릴 때부터 엄한 아버지 밑에서 남자는 울지 않는 법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또 말 수조차 없다 보니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많이 서툴러서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온 탓에 그동안 애들 엄마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돌아서면 두 번 다시 애들 엄마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제때 따스한 말 한마디 못 해 준 것이 너무너무 슬프고 후회스럽습니다.”


그는 벌겋게 부어오른 눈두덩을 손으로 누르며 울었던 흔적을 지우면서 덧붙여 말했다.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 아이들한테는 제가 울었다고 하지 말아주십시오.

혹시라도 아이들이 알면 부끄러울지도 모릅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얼굴에 남아있는 흔적이 없어질 리도 만무하고 자식들이 아버지의 표정 변화를 모를 리도 없겠지만 나는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그와 함께 나와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연달아 피운 두 개비째의 담배가 다 재로 변해버린 즈음에 이르러 예의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서 빈소로 향하는 그의 넓은 등짝을 그의 아내가 옅은 미소와 함께 토닥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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