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환자

병의 끝이 아닌 두려움의 끝을 만난 분의 글을 읽고...

by The Silent Father

차분함이 찾아오면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 작가분들의 글을 읽는다.

그중 병의 끝이 아닌 두려움의 끝을 만났다는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프지만 나는 걷고 있었다.

아프지만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아프지만 오늘의 햇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분명 병의 끝이 아니라 두려움의 끝이었다.

고통 안에도 분명 행복은 깃들어 있다고 자기소개를 한 미리나 작가님...

저주할만한 질병 가운데 있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행복한 환자였다.


어떻게 종합병원급 환자가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병보다 병을 대하는 마음을 치료해 준 분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감정은 구름입니다.

당신은 구름이 아니라 그 구름이 흘러가는 파아란 하늘입니다.


널뛰기하는 것처럼 업다운을 반복하며 괴롭히는 양극단의 감정을

구름을 감상하는 것처럼 분리시켜 준 마음의 치료...


명의보다 더 귀한 심의(心醫)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병은 현실 그대로 있었지만 마음에서는 끝난 것이다.


행복은 삶에 대한 마음의 태도이다.


'행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 일리노이대 심리학 교수인 에드 디너는

최초로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임상실험을 거친 후 위와 같이 정의했다.


행복은 어떤 삶을 사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든지 그 삶에 대한 마음의 태도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 약 6만 번의 생각을 하는데 80%가 부정적이고 95%는 반복적이라고 한다.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려고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지 재구성(CBT)'이라는 생각을 교정하는 치료법이다.


미 컬럼비아대 심리학 박사인 알버트 엘리스가 사람들의 정서적 고통을 연구한 후

1955년 창시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EBT)'가 업그레이된 심리 치료이다.


어떤 사건 자체가 감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생각 곧 해석이 감정을 결정하는 것이다.


위의 전제 하에 사건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부정적 생각을 그대로 두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여 재해석함으로 긍정적 감정의 비율을 높여 가는 것이다.


생각이 감정을 만들고, 감정이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물론, 뇌의 작용인 병적인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는 적절한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 치료는 부정적 생각을 교정하고 긍정의 감정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교정은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오래전 한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을 했을 때가 생각이 난다.

내가 쓴 글은 반드시 다른 편집부 직원들의 교정을 거쳤다.


다른 직원이 쓴 글 역시 나를 포함한 모두가 교정을 보았다.

누구의 초고도 바로 인쇄가 된 적은 없었다.

자기 글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 타인의 교정을 받아들이듯

자기 생각에 오류가 있다는 인식이 타인으로부터 생각의 교정을 받을 수 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창 40:8)


요셉은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삶의 굴곡을 거쳤다.

형들의 왕따로 인한 고독과 죽을 고비, 노예로 팔려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일...


만일 그 모든 고통의 과정을 자기 생각만으로 해석했다면 절망과 자살로 생을 마쳤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생의 조각만 볼 수 있는 자기 해석을 거부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 39:2)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해석과 함께하는 것이다.

영원과 연결된 그 해석이 형통한 자인 요셉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아들의 모든 고통도 하나님의 해석 안에서 멈추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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