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 다양함에 대하여 <끝>

견디는 건 사랑인가?

by 하이진

얼음이 거의 다 녹은 아이스티를 바라보며 어린 여자는 마침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린… 진짜 서로 좋아해요. 저는, 그래서… 이 자리가 필요했어요.”


따분한 표정의 여자는 잠시 커피잔을 굴리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래요. 둘이 잘 지내요. 이미 끝난 일이니까.”


그 담담함이 오히려 어린 여자를 불편하게 했다.
이렇게 아무런 저항도 없는 이별이라니.
퇴사하기 전 인수인계를 받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으로부터.


“화나지 않아요? 저한테… 뭐라도 묻고 싶지 않아요?”


어린 여자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제야 따분한 여자는 어린 여자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왜 화를 내야 하죠?”


“그게… 정상 아닌가 해서요.”


따분한 여자는 살짝 웃었다. 조금 비어 있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뭐가 달라지죠? 당신 마음이 편해질까요?

당신이 처음은 아니에요. 불같이 화를 낸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그는 나를 선택했죠.
이번엔 다를지도 모르지만… 내가 화를 내지 않는 편이
당신에게는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전, 최선을 다했어요. 이제 됐어요.”


그 말은 어린 여자의 가슴을 불쾌하고, 불안하고, 기묘하게 술렁이게 했다.
잠시 후, 따분한 여자는 덧붙였다.


“먼저 떠났어야 했어요. 내가 눈치가 없었죠.”


말을 마친 그녀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가를 가로지르는 햇빛이 머리카락에 닿아 흐느적이며 빛났다.
이별이 익숙한 걸까.
아니면 너무 많이 다쳐서 감각이 무뎌진 걸까.

어린 여자는 갑자기 호기심을 느꼈다.


“그 사람… 왜 좋아했어요?”


입 밖에 나온 질문은 예상보다 부드러웠다.
따분한 여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솔직하게 말했다.


“잘생겨서?”


어린 여자는 멍해졌다.


“그게 다예요?”


따분한 여자는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얼음이 다 녹아 싱겁게 변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사실 모르겠어요. 이유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이쯤 하죠? 정리도 됐고,
개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따분한 여자는 봉투 하나를 꺼내 어린 여자에게 건넸다.


“이거, 그 사람이 맡겨둔 거예요. 제가 갖고 있을 이유는 없네요.”


어린 여자는 잠시 주춤하다가 봉투를 받았다. 열쇠였다.
봉투의 열림 부분에는 몇 번이나 열었다 닫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저… 죄송해요.”


어린 여자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작았다.


“새삼스럽게. 됐어요.”


따분한 여자는 커피잔을 가볍게 돌렸다.
무언가 더 말할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견디는 건 사랑이 아니에요.
분별하기 어려운 지점이지만, 알게 될 거예요.”


따분한 여자는 피식 웃었다.


“이제 가도 되죠?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봐야 해서.”


노을이 부서지는 여름 거리 위로 따분한 여자의 뒷모습이 길게 늘어졌다.
그녀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걸렸다.

새로운 유형의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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