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갇히게 된 지도 모른 채 끝을 알 수 없이 헤매기만 했던 길들을 지나 비로소 직면하게 된 나의 결핍은 받아들여지지 못한 감정들의 파편에서 온 것이었다.
견딜 수 없었던 나 자신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흘러넘쳐 부유하던 나의 마음들.
모든 고민들은 그러한 결핍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와도 긴밀한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없었으니, 나의 감정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를 이해해 보기로 한 노력들이 지금의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글을 통해 이해받는다는 감각을 처음 맛봤던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서 아주 작은 스파크가 튀는 것을 느꼈다. 설명할 수 없었던 많은 마음들이 글로써 표현되어 나에게 다가왔을 때 느껴지던 그 짜릿함이란. 나 혼자만 존재하던 우주에서는 그 어떠한 것도 나에게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다른 우주와 연결할 수 있는 통로의 틈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작은 빛을 따라 미친 듯이 무작정 읽어 내려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반짝임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내가 찾고 있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그저 헤매었다. 글에서 시작해서 영화, 그리고 사진과 그림. 문학에서 시각예술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닿을 수 없는 신기루를 쫓아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것도 보지 않게 되는 순간이 왔다. 처음 느꼈던 감각은 희석되어 찾을 수 없었고, 타인의 이야기는 이전만큼 나를 끌어당기는 자극이 없었다.
그렇게 되고서야 나에게 어떠한 결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감정적인 교류를 배우지 못했게 문제였던 것일까.
그래서 꼬인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보기로 했다. 마음에 쌓여있던 이야기를 해내고(아무리 생각해도, 그 과정은 해냈다가 맞다.) 그 이야기를 다시 보고 또 보았다.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생소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작했던 이 행위들은 결국,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던 그 감각을 다시 쫒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내가 직접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들을 나에게 불러오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