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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엘라 Sep 28. 2015

안전이 보장되는 이별에 관하여

이별 통보에 화가 나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들을 보며 떠오른 기억 하나.


몇 해 전, 서로간에 신상정보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유형의 연애를 했다.


그렇다, 이태원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귀여운 외모의 그는

클럽이 익숙해보였고,

나는 일년에 몇 번, 혹은 그 이하로 출입하는

평범 축에 속하는 사람.


재미로 지속되는줄 알았던 연락은

끊이지 않았고, 애인 사이가 되었다.


서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증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언제 떠나도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하니

되려 오래 남아있었다.


연하였는데

아직도 1살이었더라 2살이었더라

혹은 3살인가 헷갈린다.


알고보니 외국계 기업에 다니면서

모 대학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좋은 스펙의 남자애였다.


생각보다 성실했고

예상보다는 꾸준했다.


3개월에 만나고 3개월 헤어지고

다시 만나서 3개월 사귀고 또 6개월 쯤 헤어지는걸

3번 정도 반복했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건 마지막 이별 뿐이고,

내가 다시 만나자고 한 적은 없다.


도도해서가 아니라,

나는 사람의 마음을 노력으로 되돌리는 것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매달릴 용기나 자신도 없을 뿐더러,

내 자신을 내던져서 매달릴 만큼 사랑하는 느낌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이전 연애에서

온갖 별의별 치정극을 다 겪은 뒤라

연애 비슷한 걸 하면서도

마음 한켠엔 언제든지 갈거면 가라,

같은 마음이 꽤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고,

상처는 아무는 것이고,

아물지못하고 염증만 상태로 벌어져있다고 한들

상처 낸 사람이 그걸 치유해주겠다고 덤비면

2차 감염 밖에 더 일으키겠나.


여하간에

그 연애는 결과적으로

나에게 많은 편견을 심어주었다.


집착적으로 혼자 있는걸 못 견뎌하는 애였고,

또라이 기질이 강했기때문에

친구도 많지 않아서

그애는 거의 매일 만나자고 졸랐다.

거의 매일 자자고도 졸랐다.

어떤 결핍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으나

나는 그걸 채워주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매일 매일 만나도

어찌된 일인지

감정적인 안정감이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1g도 들지 않았다.


기대감이 없으니

나는 대체로 평정심을 유지했다.


먼저 전화를 건다거나

보고싶다고 조른다거나

서운함을 토로하지 않았다.


서운함을 토로한다고 한들 바뀔 게 없어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서서히 내쪽으로 따라오게 할 만큼

여우도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가 진급을 했다며

대리가 된 명함을 자랑했다.


-오~ 축하해

하며 자연스레 가방에 넣으려는데

그 애가 주춤, 하며 어엇... 하고 당황했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아니다!!!! 너는 줘도 될것같아!!!"

라고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명함을 내밀었다.


<헤어지고 난 뒤에 여자가 회사로 전화해서

내 상사한테 나 막 쓰레기라고 욕하고 해꼬지할까봐서

명함은 잘 안준다는 것>


근데, 너는 그런 짓 안할 것 같아.

라며.......



...............?


참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짓을 많이 하고 다니면

그런 공포에 시달리니 싶어서 한심하면서,

남자들도 이별협박에 대한 공포가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명함을 돌려주었다.


"안가져갈래. 나중에 너 해꼬지 당할 일 한 번은 있을 것같은대 내가 그런거 아닌데 용의선상에 오르면 억울하자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마음도 섞고 몸도 섞다가

마음의 수명이 다하면

우리는 이별을 고한다.


누군가에겐 준비되지 않은 일일수도,

누군가에겐 오랜 기간 준비해온 일 일수도 있다.


남자고 여자고,

뒷끝없는 안전이 보장된 이별이란건,

누군가가 큰 잘못을 해서 당하는

결과가 아니라

사실 명함 하나 내미는 거 만큼의

사소한 행위의 결과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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