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계절이 쌓였다.
10월부터 추웠지만 물리적으로 11월이 되니 제법 본격적인데? 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이맘때쯤은 어마무시하게 고생하고 있을 때이다.
찬바람 쌩쌩부는 충무로 한복판에서 무거운 짐을 다섯발자국에 한번씩 내려놓고 숨을 고르면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싶어서 혼자 운게 몇 번인지도 모른다. 입만 떼면 나 너무 힘들어라고 말했다.
한순간 방향감각을 잃었을 뿐인데 회복하는데는 두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살면서 내가 겪는 모든 것들이 내 눈빛이 되고 표정이 되고,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내 안에 남는다는 글을 김애란의 단편 소설에서 읽었다.
과거의 어떤 나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삶에 차곡차곡 쌓인 사건들은 절대로 없던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억울한 게 있다면 많은 것을 겪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되려 내 경험에 다 투영시키니 한없이 편협해졌다.
그러니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는 편이 좋다.
부디 몇 해 뒤의 나는 그냥 인생을 책이나 영화로만 배워서 편협함없이 널리 이해가 가능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올 한 해에 위기와 방황과 회복과 안정을 풀로 겪었다.
그래도 1년만에 많은 것들이 '좋게된 것'에 대해 감사한다.
누군가와의 이별이 내 한 해를 돌아보는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스펙터클한 한해였는데 유독 피로감이나 안달남은 없고 가뿐하다. 지금, 현재의 많은 것들이 좋다.
내가 걷고 싶은 방향으로 걷기 위해서는 날 무겁게 부여잡는 중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잊지 말자.